그 사진은 이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지진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상기시켰다. 대지진이 할퀴고 간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 그의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서 감독은 지진 소식을 듣고 황급히 한 마을을 찾는다. 이 마을은 그가 몇 년 전 찍은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사진)의 배경으로 삼았던 곳이다. 단지 영화를 촬영한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다. 그는 영화 출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영화 찍는 것으로 유명했고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출연한 배우들 역시 이 마을의 평범한 아이들과 주민들이었다.
그러나 마을로 가는 길은 어렵기만 하다. 도로는 자동차 행렬로 꽉 막혀 있다. 감독은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선전 포스터를 보여주며 아이들이 살아 있는지 물어보지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한다.
그러나 나락과 절망에서 시작한 영화는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의지와 희망을 얘기하는 것으로 바뀐다. 폐허더미 속에서 만난 생존자들은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이 이미 말라버리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또 다른 삶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겐 이겨내지 못할 절망은 없다는 것, 영화의 제목처럼 ‘(어떻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또 다른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에서도 지진은 얘기를 풀어나가는 단서가 된다. 키아로스타미를 세계적 거장으로 알린 몇 편의 영화들에서 지진이 핵심적인 모티브로 등장했던 셈이다. 일상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를 극사실적 기법으로 담아내는 그의 영화에서 지진이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건 실제로 이란이 전 세계에서 가장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란에선 매일 한 건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한다고 한다. 지난 30년간 지진으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만 6만여명.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속에 등장한 지진은 1990년 6월에 일어나 3만5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지진이었다.
이란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 자체가 지진이 잦은 지역이다. 알프스-히말라야 지진대에 위치한 이 지역에선 지난 60년 동안 리히터 규모 6.7 이상의 강진만 11차례 일어났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등 거대한 대륙 사이에서 압력을 받는 데다 동서로 단층대가 가로 지르기 때문이다. 과거 기록을 분석한 결과 대형지진이 10년을 주기로 찾아온다는 지질학자들의 연구결과도 있다. 터키에서도 1999년 수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진이 일어났다.
이 같은 지진의 빈발 때문에 인류의 문명 발상지인 이 지역의 수천년 된 귀중한 유적들이 무너졌다. 이번에 엄청난 피해를 본 이란의 밤시에선 2000년 전 진흙 벽돌과 밀짚, 야자수 등으로 지어진 세계 최대 규모의 진흙 성채가 허물어져버렸다.
자연으로부터의 위협은 오늘날 중동세계가 직면한 또 하나의 위협과 함께 중동의 안녕에 도전이 되고 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말할 것도 없이 서방세계로부터의 정치·군사적 위협이다. 이란은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국으로부터 ‘다음 차례’로 공공연히 지목받아온 나라다.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은 1996년부터 금수조치를 받아왔다.
이슬람의 종교적 발상지인 사막에서 인간의 생존은 극히 우연적인 요소에 좌우된다. 이슬람인들은 그래서 가뭄이나 지진 등 자연재해를 입는 것도 모두 신의 뜻으로 돌린다. 한뿌리에서 나왔으면서도 자연을 정복 대상으로 보는 기독교적 가치관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삶은 계속된다’는 낙관주의도 이 같은 종교적 바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잇따른 중동의 수난을 보면서 신의 섭리에 대한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주간동아 4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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