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현장을 신고했다가 되레 용의자로 몰린 방송사 PD 강민(감우성·34)은 알리바이를 입증할 사진관의 신비한 여인 수인(서정·32)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수인의 행방은 오리무중. 강민은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단서로 옛 학적부를 뒤진다.
“찾는다는 그 여학생 이름이?”(교감·윤주상)
“예, 민수인이라고.”(강민)
몇 차례 NG 끝에 송일곤 감독(33)의 입에서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이 작품은 ‘소풍’(1999년 칸영화제 단편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 ‘꽃섬’(2001년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젊은 비평가상)으로 국제무대에서 더 알려진 송 감독의 신작.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을 노리고 있으며 5월에 개봉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크랭크인해 전남 순천의 선암사 부근과 구강분교 등에서 촬영해왔다.
송 감독은 “‘거미숲’은 러시아 소설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꽃섬’이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면 이번 작품은 양면성을 지닌 한 남자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와 한 남자의 이야기, 숲의 이미지 등 세 요소가 작품의 뼈대를 이룬다.
이 작품은 지적인 사유가 담긴 작품을 연출해온 송 감독, TV 드라마와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에서 섬세한 도시의 감성을 보여준 감우성, ‘섬’에서 도발적 매력을 발산한 서정 등 서로 다른 개성의 만남으로도 주목된다.
감우성은 “드라마에서 연기공부를 할 만큼 했다. ‘그 학교’에서 10년 넘게 연기 공부했으면 많이 한 것 아니냐. 강민 역을 연기하면서 내 자신도 놀라는 광기를 자주 발견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선암사 부근의 별장 세트에서 만난 서정은 “강민의 죽은 아내 은아와 사진관의 신비한 여인 수진 등 1인2역을 맡았다”며 “완성되기 전 시나리오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 역할은 꼭 맡아야겠다는 ‘욕망’에 시달릴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밝혔다.
“‘섬’이 남긴 강한 이미지 때문에 감독들이 나를 무서워해 그동안 캐스팅이 잘 안 됐다”는 특이한 해석을 내린 서정. 자신과 일했던 감독에 대한 평가도 흥미롭다.
“‘섬’의 김기덕 감독은 거친 에너지가 넘쳤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는 좀 둥글게 다듬어진 느낌입니다. ‘녹색의자’(올해 중 개봉 예정)의 박철수 감독은 빠르고 주관이 뚜렷하고, 송 감독에겐 철학적인 ‘느림의 미학’이 있죠.”
순천=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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