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하느라 사라졌을 걸요.”(‘석희’의 직장 동료)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한 사람의 실체에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까. 문학작품을 드라마화하는 EBS ‘문학산책’은 23일 ‘김윤영의 유리동물원’(낮 12시)을 방영한다. ‘유리동물원’은 김윤영의 소설집 ‘루이뷔똥’(2002년·창비)에 실린 단편소설.
이야기는 30대 초반의 여행사 직원 석희(이주나)가 갑자기 사라지는 데서 시작한다. 정체불명의 사람이 석희를 찾기 위해 그의 주변 인물 13명을 수소문한다.
매번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에 의해 석희의 실체는 명확해지는 듯하나, 이야기 중에 상반되는 부분이 많아 오히려 더 모호해지기도 한다. 직장 상사는 석희를 유능한 부하로, 동네 세탁소 주인은 그를 ‘맡기지도 않은 옷을 맡겼다고 몇 번이나 우기는 이상한 손님’으로 기억한다. 여행사 손님은 석희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에 사는 노숙자(이원희)와 친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석희를 찾아다니는 인물의 정체가 극의 후반에서 밝혀지면서 반전이 일어난다.
원작 소설은 석희에 대한 13명의 인터뷰를 나열하는 형식이다. 드라마화 과정에서 석희와 노숙자의 관계에 무게를 실어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작품의 끝부분에 석희가 노숙자에게 코엑스몰을 바삐 오가는 군중을 보며 “유리동물원 같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괜찮은 학벌과 직장을 가진 석희가 왜 노숙자와 친해졌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백경석 PD는 “이 말은 물신주의에 갇혀 진정한 행복을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비판”이라며 “석희와 노숙자 모두 그런 현실의 한복판에 있으면서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서로 이해할 수 있었다”고 풀이했다.
조경복기자 kath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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