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서는 시나리오를 쓰고, 권상우 등 배우들의 호연을 이끌어낸 유 하 감독(41)의 힘이 단연 돋보인다. 대중문화적 코드를 녹여낸 시집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1)를 발표하면서 문단의 스타로 떠올랐던 그는 이제 영화계에도 단단히 뿌리를 내리게 됐다. 26일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그에게 ‘흥행감독’이 된 소감을 묻자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170만 명 이상 들면 손해는 안 보는데 그냥 기본은 한 거죠.”
-1970년대의 ‘잔혹했던’ 학교생활을 다룬 영화인데 극장엔 10대, 20대 관객이 더 많다.
“그들이 공감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생활의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어른영화다. 젊은 관객의 사랑을 받는 것도 기쁘지만 나로선 30, 40대 관객들을 생각하고 만든 영화인만큼 그들과 추억과 공감을 함께 나누고 싶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벨소리는 영화 속에서 흘러나왔던 진추하(陳秋霞·첼시아 챈)의 ‘원 서머 나이트’였다. 학교생활과 사춘기의 떨림을 두 개의 축으로 다룬 ‘말죽거리…’에서 그는 70년대 말의 시공간을 고스란히 복원해 냈다.
-자전적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 엽서를 보내고, 아들의 주먹질로 아버지가 무릎 끓은 에피소드는 나 자신의 얘기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실의 편린에 픽션을 덧붙인 것이다.” 그가 만 서른 살에 만든 첫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1993)의 관객 수는 4만 명. “그때 망한 게 내겐 잘된 일이었다. 철저히 망가져야 인생 공부를 할 수 있으니까. 영화와 대중이 무엇인지 근원적으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졌다.”
그는 기가 죽어 그 뒤 영화판에는 얼씬도 안했다. 마흔을 바라보며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 무렵,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화화할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 연출로 이어졌다. ‘또 망가져 시인 망신시키면 어떡하나’는 두려움 속에 만든 두 번째 영화가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2). 저예산 영화였지만 관객 120만 명의 알찬 성과를 거두었다. 이번에는 70년대 학교 생활을 정리하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늘 과거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넘어왔다. 70년대의 억압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제 학부모가 됐다. 그때를 정리하고 반성이나 반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가 학교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은 아니다. 그는 궁극적으로 ‘말죽거리…’를 ‘상실감’에 대한 영화라고 믿는다.
“사람은 뭔가를 잃으면서 성장해간다. 독일 시인이 ‘그 옛날의 눈동자는 어디 갔는가’라고 노래했던가. 거울을 보면 나도 옛날의 눈이 아니다. 마지막 대목에서 주인공 현수가 쌍절곤으로 상대의 뒤통수를 때리는 장면은 그가 ‘순수’를 잃고 어른이 되는, 탁한 세상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을 상징한다.”
앞으로 그는 시를 다시 쓰면서 영화작업을 병행할 생각이다.
“시인은 혼자 하는 작업인데 비해 영화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장르란 점에서 어렵다. 하지만 관객의 입맛에 영합하는 영화보다는 대중을 존중하면서도 이끌어가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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