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은 몇 초 동안 ‘아∼’ 소리를 질러댔을까요?”
칠판과 태극기, 급훈이 적혀 있는 액자. 옛 교실을 떠올리게 하는 대형화면 속에서 개그맨 김용만이 나와 기발한 퀴즈 문제를 낸다. 자신의 출신 고등학교 명찰을 단 16명의 연예인들 얼굴에는 맞히면 재밌고, 틀려도 즐겁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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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 오후 6시)의 인기코너인 ‘브레인 서바이버’가 방영될 때면 유치원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TV 앞에서 ‘순발력 테스트’ 퀴즈에 정신이 팔린다.
순간 시청률 45%에 육박하는 ‘브레인 서바이버’의 폭발적 인기 때문에 ‘일요일 일요일 밤에’는 지난 연말 이후 KBS2 ‘개그콘서트’를 제치고 지상파 방송사 오락프로그램 중 1위에 올랐다. 이 코너를 패러디한 MBC ‘코미디 하우스’(토 오후 7시)의 ‘노 브레인 서바이버’도 개그맨 정준하 문천식을 스타로 떠올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지식 파괴, 세대초월 퀴즈
“브레인 서바이버의 모토는 ‘세살부터 여든까지’ 모두 풀 수 있는 퀴즈로 부담없는 웃음을 주자는 거였어요. 눈썰미만 있으면 초등학생도 잘 풀지만 대학교수도 너무 쉬운 문제를 틀려 망신을 당하기 일쑤죠. 평소 가려져 있던 양택조 서수남 같은 선배 연예인들의 구수한 매력이 빛을 발하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한마디로 세대 초월, 학력 초월 퀴즈쇼인 셈이죠.” (‘브레인 서바이버’ 진행자 김용만)
16명의 출연자 중에는 10대 후반의 갓 데뷔한 연예인 운동선수 아나운서도 있지만 양택조 서수남 엄앵란 현미 등 50대 이상 ‘왕년의 스타’들도 있다. 영화 ‘가문의 영광’에서 서울법대 졸업생으로 나왔던 정준호는 12문제를 연속해 틀리는 진기록을 세우며 꼴찌를 차지했고, 조류학자인 경희대 윤무부 교수도 역대 최저점수 기록을 여러 번 깼다. 시청자들은 대학교수나 아나운서 같은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이 망신당하고, ‘날라리’라고 생각했던 10대 연예인들이 오히려 잘 맞히는 것을 보고 매우 즐거워한다.
손병우 충남대 신방과 교수는 “‘브레인 서바이버’의 히트 이유는 청소년과 중장년층의 패널들에게서 모든 세대가 반응할 수 있는 애드리브를 이끌어내는 진행자 김용만의 공로가 크다”며 “특히 장년층 출연자들의 어눌함에 해학적 가치를 부여해 주는 김용만의 능력이 압권”이라고 말했다.
○21세기형 바보들의 경연장
‘브레인 서바이버’를 패러디한 ‘노 브레인 서바이버’는 머리를 쓸 필요도 없이 쉬운 문제도 못 맞히는 ‘바보 캐릭터’들의 개인기를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퀴즈를 맞히지 못했다는 데 기죽지 않고 자기만의 논리를 내세운다. 개그맨 정준하는 “바둑알 중 흰알 검은알이 몇 개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매사를 흑백논리로 나누는 게 싫어서 안 맞혔다”고 당당하게 주장한다.
‘노 브레인 서바이버’의 진행자 표영호는 “이들은 문제를 못 맞히는 게 아니라 안 맞히는 것”이라며 “현실이 각박해지다보니 퀴즈 프로그램에서 악착같이 이기는 것보다 안 맞히는 소신을 당당히 내세우는 ‘바보’들을 보면서 시청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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