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줄거리에 ‘욕망’이란 제목을 붙였다면 다분히 문제적 영화를 상상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영화에는 ‘욕망’도, 심지어 ‘욕정’도 빈약하다. 배우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정물화처럼 100% 통제하려고 했던 감독의 의도는 도발적인 영화 제목과 정면충돌한다. 배우들은 상황을 지배하지 못하고 레오가 들고 다니는 꼭두각시 인형마냥 시나리오에 끌려 다닌다. 야한가? 그렇지도 않다.
영화는 로사 레오 등 비현실적인 이름, 의도적으로 배제된 조연, 몇 개의 돌발적인 해프닝과 같은 장치들을 통해 얼핏 유럽 아트 무비의 ‘무의미 시(詩)’ 같은 냄새를 풍기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지의 편린만을 툭툭 던질 뿐, 사랑과 배신감과 복수심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생성되는 욕망의 복잡한 교차로를 담아내지 못한 채 여피족의 지루한 섹스 게임을 나열한다. 김응수 감독의 말대로 ‘초현실주의’라고 하기엔 심리의 꿈틀거림이 없다.
영화에서 두 가지는 성공적이다. 레오 역을 맡은 이동규. 미끈 매끈하면서도 왠지 슬프게 잡아낸 그의 몸매는 국내 영화에선 드문 양성애자 캐릭터로 손색이 없다. ‘와일드 카드’에서 퍽치기 범죄단 냉혈 두목으로 출연했던 그는 180도 변신했다. 다음은 색감. HD디지털로 촬영해, 여피족 거실과 그들이 드나드는 고급 부티크에 놓인 앤틱 풍 가구들의 쓸쓸한 색감과 화석 같은 질감을 제대로 잡아냈다. 20일 국내 최초로 온-오프라인 동시 개봉.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VOD 상영관에서도 성인인증을 거쳐 유료로 볼 수 있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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