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강남길(45)이 동네 사람들과 산에 오른 뒤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 조카 재경(류덕환)에게 다가가 “고민이 있느냐”고 묻는다. 고민이 없다고 대답하는 재경에게 강남길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는 노래를 멋들어지게 불러준다.
박복만 PD는 한번에 ‘OK’ 사인을 보내며 강남길을 향해 ‘아직도 건재하구나’하는 눈빛을 보낸다.
특유의 순박한 웃음, 소시민적인 친근함과 함께 강남길이 다시 돌아왔다.
그는 ‘물꽃마을 사람들’에서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서울 근교에서 분식집을 차리려고 하는 한세영 역을 맡아 5회부터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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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사회에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지만 동네 아이들에게만큼은 누구보다도 인기가 많은 역할이 그의 평소 이미지와 비슷하다.
그는 1999년 가정 문제와 자녀교육 때문에 고교 1년생 딸, 중학교 1년생 아들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가 이 드라마로 다시 컴백했다.
촬영현장 근처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너무 컸다”며 말을 시작했다.
“대인기피증이 생길만큼 마음고생을 했는데 다시 돌아오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극도 많이 되고…. 지난 4년은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올바르게 다시 일어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줘야지요.”
공백기간이 길었던 만큼 연기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조금은 힘들었다. 예전에는 서너 작품들을 동시에 하면서도 자가 운전을 했지만 이제는 두 작품만 해도 피곤해서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 한다고 한다.
가장 힘든 건 영국 버밍햄에 두고 온 아들과 딸이 눈에 어른거리는 것. 하지만 아이들 하교시간에 맞춰 새벽 2시에 전화를 걸면 오히려 “전화할 시간 있으면 일 더 하고 많이 주무시라”고 핀잔을 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맙다.
이렇듯 실제로 ‘기러기 아빠’인 그는 13일 방영된 MBC 베스트 극장 ‘겨울 하느님께’에서 직접 기러기 아빠를 연기했다. 자신이 체험한 기러기 아빠의 삶을 드라마의 설정에 접목시키기도 했다. 화초를 기르며 물을 주는 장면이 바로 그것. 그는 80% 정도 완성된 이 드라마를 보고 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강남길은 또 4년간의 영국생활 체험기를 ‘강남길의 오 마이 고드(Oh My God)'란 책으로 냈다. 아무 정보 없이 영국으로 떠나 고생했던 기억을 곱씹으며 영국 생활을 앞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
“그동안 허허실실 속없는 모습만 보여준 것 같아요. 이제는 어려운 사람들이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연기와 웃음을 선사하고 싶어요. 나이에 걸맞게 깊이 있는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당진=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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