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의 한물 간 할리우드 스타 밥(빌 머레이)과 결혼 2년차인 20대 여성 샬롯(스칼렛 요한슨). 둘의 인연은 낯선 일본 땅에서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을 찾았다는 사소한 이유에서 출발하지만 마침내 가슴 속 깊은 감정까지 통하는 진정한 교감으로 발전한다.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원제 Lost in Translation)는 살아온 길도 다르고, 나이차도 많이 나는 두 남녀의 끌림과 설렘을 다룬 영화다. 그 안에 일본에 대한 유머와 냉소, 삶의 서글픔과 희망 등 미묘한 감정과 몸짓들이 교차되면서 영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밥은 위스키 광고 촬영차, 샬롯은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다. 밥은 일본인 CF감독의 황당한 요구와 자기에게 무관심한 아내로 외로움과 공허함을 느낀다. 샬롯 역시 자신의 소외감과 고독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 때문에 쓸쓸하고 괴롭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 외로움에 지쳐 전화를 걸었다가 듣는 둥 마는 둥 귀기울여주지 않는 아내나 친구에게 절망하는 것도 공통적이다. 호텔방에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며 일본어 더빙 외화를 보는 밥과 샬롯. 카메라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그들의 단절된 상황을 생생하게 부각시킨다. 우연히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은 서로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차츰 상대에게 빠져든다.
영화 속에서 일본의 문화와 사람들은 두 사람에게 철저하게 낯설고 혼란스럽게 비쳐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가라오케와 성인오락실, 엽기적 쇼를 펼치는 바와 거리 풍경들. 이해를 돕기는커녕 오해를 빚어내는 통역과 알(R)과 엘(L) 발음이 구분이 안돼 생기는 의사소통 장애 등에 대한 묘사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동시에 모든 게 낯설기만 한 이방인의 소외감에 동화되도록 이끈다.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맡은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깔끔한 구성, 절제된 대사로 짧은 만남과 긴 여운을 치밀하고 섬세하게 담아냈다. 꾸밈이나 과장이 없는 어두운 톤의 화면에서 길어 올린 영상도 차분히 제 몫을 해낸다. ‘대부’를 만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딸인 소피아는 태생적으로 영화를 소화해내는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처럼 보인다.
감독의 별로 나무랄 데 없는 연출솜씨, 연륜을 쌓은 중견배우 빌 머레이와 신성(新星) 스칼렛 요한슨 두 사람의 무표정하면서도 여러 상념이 오가는 듯한 내면 연기가 절묘하게 결합된 수작으로 올해 골든글로브 작품상 수상작이다.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남녀는 정사 대신 손을 잡거나 포옹만 나눌 뿐이다. 때론 짜릿함이 아니라, 아쉬움으로 충만한 만남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고미석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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