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직도 미련을 안 버렸습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한나라당 이상득(李相得) 사무총장은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 기자실에서 브리핑 도중 방송사 카메라를 향해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히며 큰절을 했다. 이날 오전 KBS와 MBC를 방문해 당 대표 경선주자 토론회의 TV 생중계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겠다는 의미였다.
이 총장은 이날 오전 KBS 안동수 부사장을 만난 자리에서도 “정말 한번 살려주소. 한나라당이 예의 지킬 만한 정신조차 없소”라며 애원조로 매달렸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한나라당측은 작전을 바꿔 안 부사장에게 생중계의 정당성을 조목조목 제시한 뒤 “제작 책임자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안 부사장은 “제작진 면담은 정치적 압력으로 비칠 수 있다”며 거절했다.
면담 중 KBS 노조원들이 집단으로 몰려오면서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노조원들은 의원들 앞에서 “차떼기당 한나라당은 편성권 간섭 말라” “언론탄압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나갈 것을 거칠게 요구했다.
이에 노동운동가 출신인 김문수(金文洙) 의원이 “공당(公黨)의 대표들이 와서 회사 대표자를 만나는데 이럴 수 있느냐. 나도 과격하게 노조운동을 한 사람이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고 거세게 항의해 설전이 벌어졌다.
김 의원은 KBS를 나서면서도 “이렇게 정치적인 사람들이 방송을 직접 제작한단 말이냐”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MBC 김용철 부사장도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특정 정당의 토론회를 중계할 경우 선거에 영향을 미칠 발언이 나올 수 있다”고 한나라당의 중계 요구를 거부한 뒤 “(의원들의 방문이) 밖에서 보기에는 정치적 압력으로 비치는 측면이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에 이 총장은 “방송사들이 이미 제멋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지 않았느냐”며 “양심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뻔뻔스러운 자들”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노심초사하던 이 총장의 얼굴은 이날 오후 7시20분경 환하게 밝아졌다. MBC측이 한나라당에 “22일 오후 2시 한나라당사에서 당 대표 경선주자들이 토론을 벌인다면, 그 장면을 생중계할 수는 있다”고 변화된 입장을 전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 직후 KBS와 SBS도 연이어 한나라당측에 중계 의사를 전해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21일 오후 한강 둔치에서 열기로 했던 당 대표 경선주자들의 시국강연회와 전국 순회 합동연설회를 모두 취소했다.
한편 한나라당 내에선 KBS와 MBC가 전격적으로 토론회 생중계 거부 방침을 철회한 데 대해 “당초 중계 거부 이면에 작용한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이 방송 무산에 따른 역풍이 거셀 것을 우려해 중계 방침으로 입장을 선회한 것 같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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