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고하토’… 예쁜 사무라이 ‘동성애의 칼’ 들다

  • 입력 2004년 4월 6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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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만으로 구성된 사무라이 집단, 그 안에서의 호모 섹스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영화 ‘고하토’는 ‘모든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호모섹슈얼’이라는 도발적 판정을 내린다. 이 영화 속 어떤 사무라이도 동성애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사진제공 영화인
남자만으로 구성된 사무라이 집단, 그 안에서의 호모 섹스는 유죄인가 무죄인가. 영화 ‘고하토’는 ‘모든 사무라이는 기본적으로 호모섹슈얼’이라는 도발적 판정을 내린다. 이 영화 속 어떤 사무라이도 동성애에서 자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사진제공 영화인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사랑의 행태가 아니라, 그런 사랑이 잉태된 맥락에 주목한다. 23일 개봉 예정인 영화 ‘고하토’는 남자만으로 구성된 검객 집단에 횡행하는 동성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묻는다. 그는 도발적 판정을 내린다. 동성애는 바로 사무라이 조직의 본질적인 작동 원리라는 것이다.

○ 사무라이 조직내 동성애 코믹하게 담아

일본 막부(幕府)시대 말기, 최강의 검객 집단 ‘신선조’에 검술 실력이 뛰어난 카노(마츠다 류헤이)가 새로 선발된다. 조직이 술렁인다. 카노의 잘 생긴 얼굴이 사무라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기 때문이다. 동료 타시로(아사노 타다노부)가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카노를 둘러싼 애욕의 실타래는 얽히고설킨다. 신선조 총장 콘도(최양일)는 친구이자 조직 내 2인자인 히지카타(기타노 다케시)에게 지시한다. “카노에게 여자를 경험시켜 이성애에 눈뜨도록 하라.” 신선조에 대항하는 무리들의 위협이 거세지는 가운데 조직 내에서 치정으로 보이는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고하토’의 매력은 세 가지다. 아름다운 화면, 유쾌한 화법, 섬뜩한 메시지. 이 영화 속 동성애는 사실 이성애와 닮아 있다. 카노가 월등한 검술 실력을 가지고도 ‘몸을 섞은’ 타시로에게 되레 밀리는 모습은 동성애 역시 애욕의 주종관계에 의해 구조화된다는 점에서 이성애와 다를 바 없음을 말해주는 코믹한 은유다.

“총장과 당신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들어갈 수 없어요. 누가 들어오려 하면 당신이 죽여 버리니까.” 서열 3위인 오키다가 2위인 히지카타에게 내뱉는 발칙한 말이 짚어내듯, 동성애를 경계하고 조롱했던 신선조 수뇌부야말로 동성애 뺨치는 연대의식으로 똘똘 뭉쳐 배타적으로 조직을 보호해온 ‘겁쟁이 수컷들’인 것이다. 사무라이의 ‘수컷 역사’가 목숨을 다해가는 막부시대 말기를 향해 이 영화가 던지는 조롱 섞인 송가(頌歌)인 셈이다.

무성영화를 연상케 할 정도로 줄거리에 불쑥 개입하는 자막(자막 기법은 오시마 나기사의 주특기다)은 스크린 속 부조리한 연애 사태의 핵심을 통쾌하게 정리해준다. ‘열여덟이 되도록 카노가 머리를 늘어뜨리고 다니는 건 남자들의 구애를 원한다는 뜻 아니겠는가.’(자막)

그러나 ‘예쁜 남자’ 카노를 성적(性的)으로 바라보는 가장 의뭉스런 ‘수컷’은 바로 카메라 자신이다. 귀, 코, 눈매를 잇달아 클로즈업하며 마치 카노의 성감대를 자극하는 듯한 카메라는 관객에게 회유에 가까운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어때, 당신은 (동성애에서) 자유롭소?’ 하고.

○ 미소년 주인공 영화 출연후 일약 스타로

무표정이 오히려 관능미를 풍기는 카노 역의 마츠다 류헤이는 원래 J리그(일본 프로축구) 진출이 꿈이었지만, 16세 때 오시마 나기사 감독에 의해 발탁돼 이 영화로 데뷔했다. 이후 ‘달려라 이치로’ ‘연애사진’ 등 영화를 통해 청춘스타로 자리 잡았다.

일본에서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떨친 재일동포 2세 최양일도 신선조의 보스 콘도 역으로 등장, 카노에게 묘한 눈빛을 흘린다. 그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감각의 제국’ 제작에 제1 조감독으로 참여한 바 있다.

제목 ‘고하토(御法度)’는 ‘금지된 일’이란 뜻.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감독 오시마 나기사는…▼

오시마 나기사(72·사진)는 일본의 기존 가치체계와 허위의식이 만든 금기와 억압에 저항해온 논란의 감독이다. 그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치, 구로사와 아키라로 대표되는 일본영화 전통에서 벗어나 당대 일본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쇼치쿠 영화사 소속으로 활동했던 그는 ‘쇼치쿠 누벨바그의 선두주자’(‘누벨바그’는 ‘새로운 물결’이란 뜻)로 불리기도 했다.

대표작은 ‘감각의 제국’(1976년). 여인숙에 틀어박혀 섹스에만 탐닉하다가 엽기적 신체훼손과 살인행각이란 파국으로 치닫는 남녀를 통해 일본 군국주의의 탈출구 없는 음울한 풍경을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육욕과 이에 따른 죄의식을 담은 ‘열정의 제국’(1978년)으로는 칸 영화제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그는 침팬지를 애정의 대상으로 보는 한 외교관 부인을 다룬 ‘막스 내 사랑’(1987년) 이후 한동안 영화계를 떠났다. 12년 만에 ‘고하토’(1999년)로 복귀했으나 촬영 중 뇌중풍으로 쓰러져 현재 병마와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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