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봉 예정인 영화 ‘네드 켈리’(감독 그레고르 조단)는 실존했던 ‘호주 판 로빈 후드’ 네드 켈리의 삶을 다뤘다. 있을 건 다 있다. 신분을 뛰어넘는 위험천만한 사랑부터 스펙터클, 우정과 배반, 장렬한 죽음까지. 그러나 실화라는 사실성에 지나치게 기댄 나머지 곳곳에서 설명 부족을 드러낸다. 마구간에 승마 재킷을 찾으러 온 영국 부인(나오미 왓츠)은 마치 ‘시나리오가 그러니까…’라는 식으로 대번에 켈리와 사랑의 불꽃을 피운다. 그래서 음악도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고 장엄하게 느껴진다.
캐스팅은 화려하지만 캐릭터는 얼어붙어 있다. ‘기사 윌리엄’의 히스 레저, ‘반지의 제왕’의 올란도 블룸, ‘머홀랜드 드라이브’의 나오미 왓츠, ‘샤인’의 제프리 러시가 등장한다. 하지만 캐릭터에 대한 창조적 해석을 태만히 한 시나리오의 경직성에 갇혀 배우들의 연기는 살아나지 못했다. 특히 조역들의 캐릭터는 네드 켈리를 중심으로 한 여러 개의 동심원 위에 놓이지 못한 채 스크린 위를 둥둥 떠다니다 희미하게 사라진다. 영웅 스토리의 핵심이랄 수 있는 네드 켈리의 최후도 가슴 찡하다기보다는 지리멸렬한 편이다.
픽션은 창조되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사실을 이 영화는 간과한 것일까. 역사적 사실이 때론 꾸며낸 이야기보다 더 상투적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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