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실망하기엔 이르다. ‘킬빌 Vol.2’에는 전편에 이어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근원적 추진 엔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억누를 수 없는 장난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토리 한조의 명검도, 쿵푸 스승 파이 메이가 전수해 준 오지심장파열술(손가락으로 다섯 군데 혈을 눌러 심장을 터뜨리는 필살기)도, 복수심에 불타는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도 아니다. 어떤 칼이나 총보다 강력한 무기인 ‘수다’다. 철천지원수인 빌을 찾아가는 브라이드가 레이스 스커트 옷차림이라는 사실에서 이 영화의 승부수가 액션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심지어 애꾸눈 킬러 엘 드라이버(다릴 한나)는 뱀에 물려 죽어가는 버드(마이클 매드슨) 앞에서 준비해 온 메모를 줄줄 읽는다. “코브라에게 단 한 번만 물려도 결과는 목숨에 종지부다. 종지부란 말 멋지지? 꼭 써먹어보고 싶었던 말이야.”
타란티노는 버라이어티 토크쇼 같은 이 영화를 통해 마치 그리스 비극을 이야기하는 양 젠체한다. 브라이드와 백척간두 대결을 앞둔 빌은 ‘한가하게도’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을 들먹이며 영웅론과 생사(生死) 철학을 늘어놓는다. 이 같은 타란티노 표 ‘개똥철학’과 삼류 휴머니즘은 액션을 의도적으로 증발시킨 이 영화에 부피감을 불어넣는다. 감독은 감상적이고 고뇌에 찬 (혹은 그런 척 하는) 대사를 내뱉은 인물이 정작 무지막지한 행동을 일삼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이러니와 유머를 빚어낸다.
브라이드는 전편에 이어 복수의 길을 간다. 빌의 동생 버드에게 그녀가 생매장당하는 역경을 겪을 때 영화는 중국의 쿵푸 지존 파이 메이(劉家輝·리우 쟈 후이)에게 가혹한 수련을 받는 브라이드의 소싯적으로 돌아간다. 결국 기사회생한 브라이드는 마침내 빌의 앞에 선다. 하지만 자신이 만삭의 몸으로 총알세례를 받았을 때 함께 죽은 줄 알았던 딸이 살아있는 모습에 경악하며 모성애와 복수심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1편이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창조적으로 짜깁기했다면, 2편은 마카로니웨스턴을 해체한 뒤 재구성한다. 황야에서의 1대 1 대결, 극단적 클로즈업과 인물들의 심리를 과장되게 부풀린 음악 등은 세르지오 레오네 등의 서부극에서 자주 발견되는 요소들이다.
홍콩 영화제작사 쇼브라더스의 쿵푸영화도 중요한 교과서다. 타란티노는 영화 ‘홍희관’에서 주연 리우 쟈 후이의 상대역이었던 악당 파이 메이의 경박하고 자기 과시적 캐릭터를 그대로 빌려와 리우 쟈 후이에게 덧씌웠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존경하던 리우 쟈 후이에 대한 숭배와 아이러니 사이를 가뿐하게 가로지른다. 70년대 인기 TV 시리즈 ‘쿵푸’의 선한 주인공이었던 데이빗 캐러딘을 악당 ‘빌’로 바꿔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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