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화면가득 장난기 복수마저 가볍다 ‘킬빌2’

  • 입력 2004년 5월 11일 17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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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전편에 이어 6개월 만에 내놓은 ‘킬빌 Vol.2.‘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도 칼도 아닌 ‘킬러들의 수다’다. 사진제공 영화방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전편에 이어 6개월 만에 내놓은 ‘킬빌 Vol.2.‘ 이 영화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총도 칼도 아닌 ‘킬러들의 수다’다. 사진제공 영화방
‘킬빌 Vol.1’의 쿨한 액션을 기대하는가. 그렇다면 ‘킬빌 Vol.2’(15일 개봉예정)는 무척 싱겁고 심심할 것 같다. 무려 20분을 기다려야 어중간한 액션을 만나게 되는 이 영화는 단칼에 승부하는 전편과는 완전히 다르다. 상대를 처치할 때는 ‘지저분하게도’ 독사를 사용하거나 눈을 파내거나 생매장을 한다. 이판사판 혹은 이전투구에 가까운 싸움판이다. 통쾌한 피범벅도 없다.

그러나 실망하기엔 이르다. ‘킬빌 Vol.2’에는 전편에 이어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근원적 추진 엔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바로 억누를 수 없는 장난기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하토리 한조의 명검도, 쿵푸 스승 파이 메이가 전수해 준 오지심장파열술(손가락으로 다섯 군데 혈을 눌러 심장을 터뜨리는 필살기)도, 복수심에 불타는 ‘더 브라이드’(우마 서먼)도 아니다. 어떤 칼이나 총보다 강력한 무기인 ‘수다’다. 철천지원수인 빌을 찾아가는 브라이드가 레이스 스커트 옷차림이라는 사실에서 이 영화의 승부수가 액션이 아닌 다른 곳에 있음을 간파해야 한다.

심지어 애꾸눈 킬러 엘 드라이버(다릴 한나)는 뱀에 물려 죽어가는 버드(마이클 매드슨) 앞에서 준비해 온 메모를 줄줄 읽는다. “코브라에게 단 한 번만 물려도 결과는 목숨에 종지부다. 종지부란 말 멋지지? 꼭 써먹어보고 싶었던 말이야.”

타란티노는 버라이어티 토크쇼 같은 이 영화를 통해 마치 그리스 비극을 이야기하는 양 젠체한다. 브라이드와 백척간두 대결을 앞둔 빌은 ‘한가하게도’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을 들먹이며 영웅론과 생사(生死) 철학을 늘어놓는다. 이 같은 타란티노 표 ‘개똥철학’과 삼류 휴머니즘은 액션을 의도적으로 증발시킨 이 영화에 부피감을 불어넣는다. 감독은 감상적이고 고뇌에 찬 (혹은 그런 척 하는) 대사를 내뱉은 인물이 정작 무지막지한 행동을 일삼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아이러니와 유머를 빚어낸다.

브라이드는 전편에 이어 복수의 길을 간다. 빌의 동생 버드에게 그녀가 생매장당하는 역경을 겪을 때 영화는 중국의 쿵푸 지존 파이 메이(劉家輝·리우 쟈 후이)에게 가혹한 수련을 받는 브라이드의 소싯적으로 돌아간다. 결국 기사회생한 브라이드는 마침내 빌의 앞에 선다. 하지만 자신이 만삭의 몸으로 총알세례를 받았을 때 함께 죽은 줄 알았던 딸이 살아있는 모습에 경악하며 모성애와 복수심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1편이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창조적으로 짜깁기했다면, 2편은 마카로니웨스턴을 해체한 뒤 재구성한다. 황야에서의 1대 1 대결, 극단적 클로즈업과 인물들의 심리를 과장되게 부풀린 음악 등은 세르지오 레오네 등의 서부극에서 자주 발견되는 요소들이다.

홍콩 영화제작사 쇼브라더스의 쿵푸영화도 중요한 교과서다. 타란티노는 영화 ‘홍희관’에서 주연 리우 쟈 후이의 상대역이었던 악당 파이 메이의 경박하고 자기 과시적 캐릭터를 그대로 빌려와 리우 쟈 후이에게 덧씌웠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존경하던 리우 쟈 후이에 대한 숭배와 아이러니 사이를 가뿐하게 가로지른다. 70년대 인기 TV 시리즈 ‘쿵푸’의 선한 주인공이었던 데이빗 캐러딘을 악당 ‘빌’로 바꿔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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