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올드보이’ ‘여자는…’의 유지태

  • 입력 2004년 5월 13일 17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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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몸무게를 12kg이나 늘려 열연한 유지태(오른쪽). 사진제공 시네와이즈필름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몸무게를 12kg이나 늘려 열연한 유지태(오른쪽). 사진제공 시네와이즈필름

청춘스타로 인기를 한 몸에 얻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지태가 연기자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랜 얘기가 아니다.

1998년 최호 감독의 ‘바이 준’으로 데뷔한 유지태는 ‘주유소 습격사건’ ‘동감’ ‘가위’ ‘리베라메’에 이르기까지, 뚜렷하게 눈에 띄는 인물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가 지금처럼 대성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의 잠재력을 처음으로, 그리고 제대로 간파한 감독은 허진호였다. 유지태는 2001년 허 감독의 두 번째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비로소 영화사전에 ‘2000년대 초반의 청춘스타 가운데 한 명’쯤으로 오를 뻔하다 비교적 ‘길게 갈’, 개성 있는 연기자로서의 발판을 다졌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상대방의 눈을 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주머니에 두 손을 찌르고 다소 몸을 흐느적거리며 이미 변심한 여인 앞에서 어렵게 어렵게 이런 얘기를 꺼내는, 연약하면서도 가슴 깊은 남성 역을 하기에 그만한 연기자가 없다. 그 유명했던 대사를 기억하시는지.

“유지태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두 편에서 완전히 다른 인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랑이…어떻게 변하니?”

하지만 사랑은 변하는 것이다. 사람이 변하니까. 그런 변화는 유지태 스스로가 ‘봄날은 간다’ 이후 작품 속에서 계속 보여주고 있다.

그러니 그 명대사는 사실 이렇게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구나…사랑은 변하는 것이구나”라고.

유지태는 요즘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자신이 출연한 두 편의 영화 ‘올드 보이’와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나란히 출품됐기 때문이다. 그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턱시도 차림으로 칸영화제 전용관인 뤼미에르 극장 입구 레드 카펫을 걸어갈 때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에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길 만큼 의미 있는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는 두 편의 영화에서 완전히 다른 두 명의 인간을 연기해 냈다는 점이다.

칸의 영광 따위에 비하면 연기자로서의 자부심이 더 큰 가치를 지닐 터이다. 5일 개봉된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그는 영화를 ‘조금 아는’ 관객들에겐 마치 홍상수 감독의 실제 모습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가 이 영화를 위해 몸무게를 12kg이나 늘린 것도 감독의 속내에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성현아와 어설픈 섹스 끝에 침대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그의 피둥피둥 살찐 모습이란 정말 가관이고, 이 배우가 정말로 영화를 위해 몸을 바치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영화 말미에 대학 강사인 그가 술을 마시다 ‘당신은 저질’이라는 한 학생의 비난을 듣고 도대체 저질이 뭐고, 고질이 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홍 감독은 유지태의 몸을 빌려 예술가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악을 써대고 있는 셈인데 그 순간만큼은 진실로 가슴 한구석이 쿡 찔린다.

영화는 종종 자신이 살아가는 진면목을 목격하게 만든다. 진정한 배우는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유지태는 요즘 그런 인물이 됐다. 그가 앞으로 걷게 될 영화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18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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