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낮 12시 반(현지시간) 프랑스 칸의 ‘팔레 드 페스티벌’. 제 57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올드 보이’의 감독 및 주연배우가 참석한 기자회견장에서 최민식(42)에게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다.
질문에 답하는 그의 한 마디에 장내는 폭소탄을 맞은 듯 웃음바다로 변했다.
“어쩌다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 난 절대 채식주의자가 아니다. 고기도 잘 먹는다. 단, 촬영 때 죽은 산낙지 4마리에 대해 대단히 미안한 마음이다.”
재치 넘치는 그의 대답은 ‘스크린 인터내셔널’ 등 유수의 영화잡지에 일제히 소개됐다. 2002년 ‘취화선’에 이어 칸에 두 번째 방문한 최민식은 이 자리에서 그간 ‘동양 배우’의 비교우위로 여겨지던 겸손을 뛰어넘어 대단한 자신감을 보여주었다. 그는 칸에 두 번째 온 소감을 묻는 질문에 “영광이다. 더 잘 하라는 뜻으로 알겠다. 어깨가 무겁다”란 국내 각종 영화제를 휩쓸어온(?) ‘단골 소감문’을 내던져 버리고 이렇게 답했다.
“친구네 집에 다시 놀러온 느낌이다. 저번에는 ‘취화선’이란 선물로, 이번에는 ‘올드 보이’란 선물을 갖고 왔다. 즐겁다.”
칸 영화제가 ‘올드 보이’에 영광을 준 게 아니라, ‘올드 보이’가 칸에게는 ‘선물’이라는 뜻이었다.
궁리(鞏리) 장만위(張曼玉) 등 중국 배우들이 세계무대에서 잇따라 조명 받을 때 한국의 눈높이는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던 강수연에 머물러 있었다. 강수연 이후 국제무대에 내세울 만한 월드 스타의 ‘대가 끊긴’ 한국 영화계에서 최민식은 이날 새로운 이미지 전략을 구사해 주목됐다.
최민식은 시종일관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장악했고, 긴장의 끈을 잡아당겼다가 유머로 확 풀어내는 등 세련된 매너를 보였다. 그는 말과 행동을 통해 국제무대에 자신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세일즈’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적 배우의 조건은 물론 연기력이다. 그러나 이제 명연기만이 스타의 조건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 최민식의 존재는 그래서 더욱 빛나 보였다.
칸=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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