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균형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 판단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져야 한다.”
대통령 탄핵 방송이 편파적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언론학회의 연구보고서에 대해 해당 방송사 노조가 내어 놓은 성명들 중 점잖고 또 어렵게 보이는 것들만 모은 것이다.
물론 자신이 판단해야 할 일을 언론학회에 미뤄버리고 존재를 감춰버린 방송위원회의 문제부터 따지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지금은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인 방송에서 공정성과 자유가 어떻게 조화돼야 하는가를 바로 아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방송사 ‘편파보도’ 깊은 성찰을▼
헌법은 개인은 물론이고 신문사, 방송사도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사건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평가하도록 보장하고 있다. 한정된 자원인 전파를 사용하기 때문에 방송은 신문과 달리 태생적으로 공공적이고 따라서 그에 따른 무거운 법적·윤리적 책임을 진다는 교과서적인 얘기도 방송사가 스스로 판단하고 보도할 자유를 가짐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신문은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는데 방송은 하지 말라는 것이냐”는 방송사측의 반발은 원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언론학회가 심각하게 지적한 것은 ‘보도의 편파성’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 방송법도 “방송에 의한 보도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로 보도 자체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지키는 것은 방송사가 언론사이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런 점에서 처음부터 탄핵소추는 잘못됐다고 판단한 뒤 프로그램을 제작했기 때문에 편파적이라는 언론학회의 지적에 대해 방송사는 먼저 통회의 성찰을 해야 한다. 탄핵에 반대하는 사람이 70% 이상이어서 인터뷰 집단의 선정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는 변명 역시 우리 방송법이 편성의 자유보다 더 강조하는 ‘시청자의 권익보호’ 규정을 생각하더라도 궁색하긴 마찬가지다. 즉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 편성 또는 제작에 시청자가 참여하도록 되어 있음은 물론이고 방송의 결과가 시청자의 이익에 합치해야 된다”는 방송법 규정은 편성의 자유가 ‘나 홀로 판단의 자유’가 아님을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공영방송을 근간으로 하는 현재의 방송법제에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라는 근본 목표가 이렇게 흔들렸다면 이는 구조적 위기라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언론개혁의 방향과 관련해 다음의 점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첫째, 국가 기간방송인 KBS가 지난번엔 방만한 경영을 이유로, 이번엔 공정성 시비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현재의 법제로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독립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던 ‘KBS법’이 2000년 방송법으로 흡수돼 사라졌건만 정작 정부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오히려 비판적 신문사에만 신경 쓰는 구조적 문제는 ‘KBS법’을 되찾아주는 한편, 사장 임명절차 등을 상세히 추가해 권력의 사랑으로부터 독립시켜야 할 당위성을 말해준다.
둘째, 방송사들의 소유구조에 관계없이 모두 보도의 편파성을 지적받았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신문사들을 자본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소유와 시장점유율을 제한하는 언론개혁 방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부가 100% 지분을 갖는 KBS나 자본의 공영성을 내세워 공익재단이 주인인 MBC나 개인이 주인인 SBS 모두 문제가 됐다는 사실은 자본의 영향력 차단과 보도의 공정성 확보가 전혀 별개의 문제임을 잘 보여준다.
▼언론학회보고서 정부대응에 주목▼
따라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언론개혁이 신문이든 방송이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고 공정한 언론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비판신문을 길들이기 위해 만들어진 편파 기획물인지는 정부가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지켜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방석호 홍익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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