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개봉 3주 만에 200만 관객에 가볍게 다가서고 있는 ‘투모로우’는 대기 온난화로 인해 빙하들이 녹아내리고 북반구 해수면 온도가 급랭하면서 다시 빙하기가 닥친다는 내용의 재난 SF영화다.
이 작품에서 거론되는 과학이론들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와는 별개로 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와 죽음을 코앞에 둔 사람들의 영웅적 이야기는 눈과 귀를 쏠리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저게 도대체 말이 되느냐”고 툴툴대는 사람이 있다면 짐작컨대 10년에 한 번꼴로 극장을 찾는 사람일 것이다.
‘투모로우’는 과학영화가 아니라 과학적 상상력의 영화이며, 재난영화가 아니라 재난에 닥친 사람들의 인간성을 다루는 영화다. 이 작품에서 가장 큰 볼거리는 뉴욕을 삼켜버리는 엄청난 규모의 해일이나 눈보라가 아니라 죽음을 뚫고 아들을 구하러 가는 아버지 퀘이드의 의지에 찬 눈동자다.
“내게 아들 아니면 죽음을 달라!”
퀘이드가 전하는 이 절절한 마음이야말로 ‘투모로우’의 진짜 얘기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퀘이드는 톱스타였던 멕 라이언의 전 남편이다. ‘톱 스타였던’이라고 해서 미안하지만 라이언도 이제 그럴 때가 됐다. 라이언이 그럴진대 퀘이드야 두말할 나위가 없다. 퀘이드는 애초부터 빅 스타급이 아니었다. 둘 사이는 커트 러셀과 골디 혼 부부만큼 할리우드의 잉꼬부부로 소문이 나 있었다. 10년이 넘도록 오래 살았는데 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러셀 크로 때문이었다. 아니면 이미 금이 가기 시작했을 때 크로가 나타났거나.
부부가 10년 이상 살다 보면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라이언은 크로와 ‘프루프 오브 라이프’란 영화에 출연하면서 염문을 뿌리기 시작했고 결국 퀘이드와 헤어지고 말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라이언이 그 후 다시 크로와도 갈라섰고 영화 쪽에서도 서서히 빛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퀘이드는 한동안의 슬럼프를 딛고 일어나 제2의 연기인생을 시작하고 있는 듯 보인다.
퀘이드가 2000년 라이언과 헤어진 뒤 지금까지 찍은 영화만 대략 7편. 물론 주연, 조연을 모두 합친 숫자다. ‘프리퀀시’ ‘트래픽’ ‘루키’ ‘파 프롬 헤븐’ ‘콜드 크릭’ ‘알라모’, 그리고 이번의 ‘투모로우’다.
퀘이드의 영화 가운데는 요즘 것도 좋지만 오히려 초기 작품 가운데 뒤져볼 만한 작품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엘렌 바킨과 주연을 맡은 짐 맥브라이드 감독의 1987년 작 ‘뉴올리언스의 밤’. 이때만 해도 퀘이드는 30대 초반의 혈기 방장한 젊은이였다. 무모하고 거침이 없으며 제멋대로 독설을 퍼붓는 유쾌한 형사 역을 맡았다. 퀘이드에게는 겉으로 낄낄대고 호들갑을 떨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다른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을 읽어낼 줄 아는 심성이 느껴진다. 의도된 가벼움이 있지만 종종 가슴을 울리는 행동으로 ‘감동 먹게’ 하는 뚝심의 남자. 퀘이드의 매력은 바로 그런 이미지에 있다.
참고로 전처였던 라이언과 함께 출연한 작품은 2, 3편 정도다. 그중에서 조 단테 감독의 ‘이너 스페이스’는 볼만한 수작이다. 한편 더, 두 사람과 제임스 칸, 귀네스 팰트로가 같이 나왔던 1993년 작 ‘악몽’은 보는 사람에 따라 악몽이 되는 영화다. 다행인 것은 비디오 가게에서도 ‘악몽’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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