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개봉되는 일본 곤 사토시 감독의 두 번째 애니메이션 ‘천년여우(千年女優)’는 △격동기를 살아온 여배우의 일대기(사실) △여배우가 출연한 시대 애정극(영화 속 영화) △다치바나의 판타지(환각) 등 층위가 다른 3개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교차시킨다.
그러나 얽히고설킨 구성을 한 꺼풀 들춰보면 과거와 현재, 사실과 허구가 동일한 패턴을 이루며 반복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잡해 보이지만 다 보고나면 어딘가 단조롭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환각과 현실을 교직시킨 감독의 데뷔작(‘퍼펙트 블루’)에 비해 이야기의 부피감과 역동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여배우의 파란만장한 일생이라는 서사 형식과 스케일을 통해 구성의 단점을 메워간다.
곤 사토시 감독은 영리하게도 애니메이션에 대한 선입견을 배반하는 방식으로 고유한 입지를 구축해 왔다. 만화적 꿈과 과장을 자제한 채 건조하고 사실적인 화면과 구성, 캐릭터를 이야기 전개의 추진력으로 삼는다.
이같은 스타일은 ‘실사 영화로 옮겨도 손색이 없다’는 그럴 듯한 해석과 평가를 낳게 마련이지만, 사실 아이러니다. 만화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것이 새로운 만화적 상상력으로 자리 잡는다는 것은.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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