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면 배우의 경우에는 맷 딜런, 매튜 브로데릭, 매튜 모딘이 그렇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종종 알폰소 아라우 감독과 동일 인물처럼 생각된다. 아라우 감독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구름속의 산책’을 만들었다. 작품을 만드는 분위기상으로는 이번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의 경우 아라우 감독이 더 어울릴 것처럼 보인다. 아라우의 영화는 늘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작품처럼 느껴지니까.
그에 비해 쿠아론 감독에게 ‘해리포터’ 시리즈는 그의 전작과 비교하면 다소 생뚱맞아 보인다. 쿠아론의 작품으로는, 국내에서 개봉됐지만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이 투 마마’가 있다. 귀네스 팰트로와 에단 호크가 나왔던 ‘위대한 유산’도 그가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쿠아론이든 아라우든 멕시코 감독들이 왜 요즘 이렇게 부쩍 할리우드 영화들을 자주 만들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들이 할리우드로 가는 이유는 멕시코 영화계가 그만큼 미국의 직접적 영향권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작가들조차 쉽게 미국 영화계로 영입되거나 편입되고 있는 것이다. 멕시코 영화산업은 현재 할리우드에 거의 종속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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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아론의 전작 ‘이 투 마마’는 그가 얼마나 조국 멕시코의 현실에 대해 뼈아픈 자기반성과 회한의 시선을 갖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언뜻 보기에 이 영화는 연상의 여인과의 해변 여행을 통해 겪게 되는 두 청소년의 성적 체험담, 그것에 따른 성장기를 그린 내용 같지만 속내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결코 그렇게 단순한 내용이 아니다. 두 아이의 여행에는 늘 멕시코의 정치 사회적 풍경이 얽힌다. 그 풍경을 보고 있으면 멕시코에는 여전히 풍요와 빈곤이 심각하게 교차하고 있으며 시위가 계속되고 검문검색 검열이 이어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 ‘이 투 마마’가 아무리 ‘너의 엄마와도(그짓을 했어)’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포르노적인 제목과 함께 그에 상응하는 듯 2 대 1 섹스까지 보여준다 해도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결코 그 때문이 아니다.
성(性)과 정치는 어쩌면 한 몸이다. 정치적으로 억압돼 있는 나라일수록 성 문화는 폐쇄적이다. 영화 속 두 아이가 떠나는 성의 여행기는 어쩌면 멕시코의 새로운 사회를 찾아 나서려는 진보적 이상주의자의 여행과도 같다.
남미 문화의 정체성을 지키고자 하는 쿠아론의 노력은 사실 이번 ‘…아즈카반의 죄수’에서도 곳곳에 잘 숨겨져 있다. 이번 작품은 액션 어드벤처보다 판타지 쪽에 더 기울어 있다. 판타지, 환상, 몽환이란 단어는 남미와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전작 1, 2편은 판타지보다는 세 마법사 아이의 액션 어드벤처에 가까웠다. 3편에서 특수효과보다 드라마가 더 강해진 것도 쿠아론이 감독을 맡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해리포터 시리즈로 할리우드에서 돈을 버는 쿠아론의 모습은 보기에 그리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할리우드에서 돈을 벌더라도 찰스 디킨스 원작을 영화로 만든 ‘위대한 유산’ 같은, 예술적 심미안이 돋보이는 작품이라면 나쁘지 않다. 그건 괜찮다. 알폰소 쿠아론이 좀더 멕시코다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해리포터의 마법에 기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 모두 함께 주문을 외우자. ‘익스펙터∼ 패트로늄∼∼!!’
15일 개봉. 전체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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