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개봉된 ‘아이, 로봇’은 줄거리만으로는 그렇고 그런 SF 영화처럼 보인다.
배경은 서기 2035년의 비교적 가까운 미래 사회. 로봇공학이 발달해 사람들은 거의 모든 생활을 로봇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 독점기업에서 최첨단 기능의 새로운 로봇을 출시할 때쯤 ‘로봇의 아버지’로 불리는 마일스 박사가 살해된다. 뜻밖에 용의자로는 박사가 분신처럼 여긴 로봇 ‘서니’가 지목된다. 인간을 향한 로봇의 대 반란이 시작되지만 이 음모를 간파하는 사람은 오직 한사람, 로봇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스푸너 뿐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로봇의 쿠데타를 저지하는 고집불통 형사의 액션 영웅담일까? 이 작품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그보다 좀 더 정교한 이론과 사유를 요구한다. 매우 대중적인 이야기의 틀을 가져오는 척, 영화는 미래문명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한번 해보자며 슬쩍 관객들을 유도한다.
이 영화의 중심 테마는 1940년대 아시모프가 창안한 이른바 ‘로봇공학 3원칙’에 대한 소요학파(消遙學派)적 탐색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좀 길긴 하지만 이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로봇3원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제1원칙은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끼쳐서는 안 되며, 위험에 처해있는 인간을 방관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은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 단 제1원칙에 위배되어서는 안 된다’이다. 제3원칙은 ‘로봇은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단 제1, 제2원칙에 위배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이 원칙은 결국 논리적 함정을 갖는다. 예컨대 인류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그것이 특정 집단에 의한 것이라면 그 특정 집단을 없애라는 또 다른 인간의 명령에 로봇은 복종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이쯤 되면 로봇에 대한 문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윤리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로봇이 마치 자기의지로 진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 논리적 함정 때문이다. 선행이든 악행이든 로봇의 행동은 창조자인 인간의 행태와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로봇은 사실상 인간이다. 이에 대해 아시모프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그의 작품을 영화로 만든 프로야스 감독은 의문을 가진 것 같다. 인류가 휴머니즘에 대한 확신 없이 로봇을 만들어도 되는가, 첨단과학화한 인류문명의 미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점이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들과의 지적 토론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태어나 호주에서 자라 그곳에서 영화를 배운, 독특한 이력의 프로야스 감독은 CF와 뮤직 비디오 감독으로 시작한 만큼 MTV 스타일의 간결하고 강렬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그의 영상미학의 원조는 프리츠 랑에서 리들리 스콧까지 그 범위가 매우 넓어 보인다. 전작인 ‘다크 시티’의 경우 랑의 ‘메트로폴리스’처럼 미래도시의 어두움을 고딕풍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으로 살려냈다.
프로야스 감독은 리샤오룽(李小龍)의 아들 브랜든 리의 유작으로 유명한 ‘크로우’로 데뷔했으며 SF 형식에 스릴러, 액션, 로맨스를 뒤섞는 크로스 오버적 특성이 엿보인다. 그의 일관된 주제는 ‘인간본성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이다. 이번 작품 ‘아이, 로봇’도 예외는 아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지적 SF스릴러다. 영화를 보다 보면 머릿속에서 꽤나 땀이 흐른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다. 이것도 나쁘지 않다.
12세 이상 관람 가.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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