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카란디루’는 북아일랜드 시민과 영국군의 유혈충돌을 다룬 폴 그린그라스 감독의 ‘블러디 선데이’처럼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냐에 시선을 맞춘 작품은 아니다. 인간 사냥을 연상시키는 학살과 피로 물든 진압 현장은 영화가 시작된 뒤 2시간이 지나서야 등장한다.
이전 작품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한 감방에 갇힌 트랜스젠더와 정치범을 통해 사랑의 의미와 브라질 현대사의 치부를 들춰낸 헥터 바벤코 감독. ‘카란디루’는 그의 전작보다 무대는 확장됐지만 억압된 공간 속의 인간 존재 조건을 다뤘다는 점에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사실성이 주는 충격으로 기억에 남는다. 감옥의 어둡고 좁은 공간을 클로즈업한 화면들은 관객 자신이 감옥에 수감된 것처럼 끈적끈적하고 불안하고 불쾌한 느낌을 갖게 한다.
카란디루는 죄수들이 만든 ‘또 하나의 도시’. 이곳에는 지배와 피지배, 사랑과 폭력, 독방에 TV를 소유한 ‘부자 죄수’와 10여 명이 한 방을 나눠 쓰는 가난한 죄수, 매매춘과 마약이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점만 빼면 모든 것이 가능하고 모든 것이 있다. 두 여자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다 수감된 바람둥이, 교도소에서 아들을 맞은 늙은 죄수, 감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동성애자….
바벤코 감독은 진실에 대한 일방적 주장보다는 익명성에 갇혔던 죄수들에게 얼굴과 이름을 돌려줌으로써 이들이 무자비하게 희생돼서는 안 될,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보여준다. 영화의 상당 부분은 2002년 상파울루 주 정부가 카란디루를 폭파하기 전 현장에서 촬영됐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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