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빈집’.”
12일(한국시간) 제61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시상식장. ‘빈집’의 김기덕 감독(44)은 감독상 수상자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함께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하류인생’의 임권택 감독부터 찾아 고개 숙여 악수를 청했다. 무대에 오른 김 감독은 “방금 제가 인사 드린 분은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이며 가장 오랫동안 영화를 만든 분”이라고 소개했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직전의 전화 인터뷰에서 김 감독은 피곤함이 묻어나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소감을 밝혔다.
―임 감독에게 인사하는 것은 수상 전에 미리 생각했나.
“꼭 시상식에 참석해 달라는 마르코 뮬러 집행위원장의 언질이 있어 수상은 예감했지만 무슨 상인지는 행사 직전에 알았다. 무대에 올라가기 5분 전쯤 임 감독께 예의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잘 안 벗던 모자도 벗기로 했다. 임 감독이 내가 상 받는 동안 내내 기립 박수로 맞아줘 고마웠다.”
―현지 평론가와 관객 반응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국 마이크 리 감독(61)의 ‘베라 드레이크’를 앞섰다. 베를린영화제 수상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 수상에 걸림돌이 된 것 아닌가.
“리 감독은 대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 나에게 감독상을 준 것은 영화의 독창성과 스타일을 감독적인 역량으로 평가해서인 것 같다.”
―2003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이후 작품이 ‘착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런 점이 있다.”
●‘빈집’10억원 들여 16일만에 촬영
1996년 ‘악어’로 데뷔한 김 감독은 ‘빈 집’까지 11편의 작품을 연출한 ‘다산(多産)’의 작가이자 저예산 영화에 주력해왔다. 수상작인 ‘빈집’은 7월 10억원의 제작비로 16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 그의 작품들은 국내에서는 폭력성과 반(反)여성성으로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국제영화제는 그의 독특한 색깔에 매료돼 단골로 작품들을 초청해 왔다.
그는 정식으로 영화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초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일했으며 해병대 복무를 자원했고 3년간 프랑스를 떠돌면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스파이크 리 “빈집 리메이크”
―시상식 후 리셉션에서 심사 과정에 대한 얘기도 있었나.
“내가 좋아하는 두상 마카베예프 감독이 스토리를 좇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당신의 작품은 이미지를 담아 특별하다고 말해 즐거웠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말콤 X’의 스파이크 리 감독이 ‘빈집’을 리메이크한다는 소문이 있던데….
“리셉션장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이 ‘원더풀’이라고 칭찬하며 다가와 리메이크 판권 얘기를 꺼냈다. 현장에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전화번호와 e메일 주소를 받았다.”
―수상 순간 누굴 생각했나.
“사랑하는 가족과 영화 스태프…. 무엇보다 이제까지 살아온 ‘과거의 나’에게 감사한다.”
―차기작은….
“‘나는 살인을 위해 태어났다’(가제)가 유력하다. 살인도구인 권총의 입장에서 주인을 바라보는 이야기다.”
2월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받을 때 잠바 차림으로 시상대에 올랐던 김 감독은 이번엔 양복을 입었다. 김 감독은 “그때 옷에 대해 말이 많아서…. 양복은 협찬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김기덕 손의 ‘눈’ 그림은…영화속 주인공 흉내▼
시상식장에서 김기덕 감독이 손바닥을 내뻗어 보여준 ‘눈’ 그림.
김 감독은 “이 그림의 의미는 영화를 보신 분들만 알고 있다”고 말했고 객석은 박수와 웃음으로 화답했다.
‘눈’ 그림은 영화 속 남자 주인공 태석의 ‘유령 연습’을 흉내낸 것. 태석은 유령처럼 남들의 눈에 띄지 않고 같은 공간에 숨어 있겠다며 손바닥에 눈과 눈썹을 그린 채 자신의 몸을 감추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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