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심사 필요한 ‘방송위 잣대’

  • 입력 2004년 9월 15일 18시 45분


방송위원회가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업권 재허가 심사 과정에서 자의적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방송위는 얼마 전 ‘의견 청취’를 이유로 방송사 사장들을 나오라고 했다가 방송사들이 “규정에 없는 일”이라며 반발하자 실무 책임자의 의견을 듣는 데서 그쳤다. 방송법상 ‘청문(聽聞)’ 절차는 프로그램이나 경영 상태 등을 평가한 결과, 기준(1000만점에 650점)에 못 미쳐 재허가해 주기 어려운 방송사에 소명 기회를 주는 것인데도 방송위는 심사 초장부터 사장들을 오라 가라 했던 것이다.

방송위는 또 1차 의견을 들은 지 일주일 뒤인 14일 KBS, SBS 등 9곳에 대해 2차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방송위는 “평점과 무관하게 특정 분야에 심각한 문제가 있으면 모두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이는 방송위가 수십 항목에 걸쳐 매긴 평점을 무시하고 심사과정을 맘대로 변경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해당 방송사들도 “규정을 무시한 절차를 두 번씩이나 하려 한다”고 반발하고 있다.

민영방송에 대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심사 기준으로 삼겠다고 한 것도 권한 남용의 사례다. 이에 대해서는 방송위 내부에서도 “근거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자 성유보 심사위원장은 14일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심사 대상이 아니나 그로 인한 방송의 공익성 침해는 따져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방송위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방송의 공익성’과의 인과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방송위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던 KBS 등 탄핵 방송의 편파 논란에 대해 수개월이 지나서야 겨우 “심의 대상이 아니다”는 한마디로 자기 책임을 차 버린 적이 있다. 방송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방송의 과거사 규명감”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 방송위가 재허가 추천 심사과정에서 돌변했다. 특히 민영방송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고 설득력도 결여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방송위가 재허가 추천권을 남용해 정권에 비우호적인 특정 방송사를 길들이려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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