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갑식]영화진흥委의 ‘번복’파문

  • 입력 2004년 9월 30일 19시 00분


내년 2월에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영화제에 출품할 한국영화 선정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지난달 23일 5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빈집’을 이 영화제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했다가 번복했기 때문이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빈집’과 국내에서 10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태극기 휘날리며’가 경합을 벌였지만 선정위는 만장일치로 ‘빈집’의 손을 들어 줬다.

그러나 영진위는 바로 이튿날 ‘판정’을 번복했다. 최종 결정이 아니었다며 이번에는 ‘태극기…’의 손을 들어 줬다. 하루 1회만 상영하는 ‘빈집’의 개봉이 아카데미측이 규정한 ‘정상적이고 통상적으로 간주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게 영진위가 내세운 번복 사유였다.

하지만 아카데미측은 28일 영진위의 해석과 달리 ‘빈집’의 출품이 가능하다고 이 작품의 해외 마케팅 대행사에 통보했다. 영진위가 문제 삼은 1일 1회 제한상영은 아카데미 개막을 앞두고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다.

이에 따라 영진위가 영화제의 규정조차 제대로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가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을 영진위가 번복함으로써 불필요한 의혹을 낳았을 뿐 아니라 스스로 신뢰를 무너뜨린 꼴이 됐다.

파문이 확산되자 영진위측은 30일 “후보작 추천 권한을 한국의 영진위에 부여해 놓고도 다른 얘기로 혼란을 불러일으킨 아카데미측에 공개적 입장 표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낼 계획”이라며 “아카데미가 우리를 존중한다면 ‘빈집’은 2005년이 아닌 2006년 출품작으로 선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국내에서 해결해야 할 출품작 선정 문제에 아카데미측까지 끌어들여 국제 망신을 자초한 셈이다.

아카데미영화제는 최근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한국영화가 도전해야 할 큰 무대다. 이런 마당에 한국영화 해외 진출의 산파 역을 해야 할 영진위가 무원칙한 결정과 번복으로 오히려 한국영화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있어 걱정스럽다.

김갑식 문화부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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