얻어맞고 살던 이승연(극중 선화)이 빈집만 골라 다니며 사는 남자 태석과 함께 집을 뛰쳐나온다. 그 후 들어간 첫 빈집(사진작가의 오피스텔)엔 이승연의 누드사진이 걸려 있다. 뚫어져라 사진을 보던 이승연은 사진을 30등분해 버린다. 눈은 이쪽, 다리는 저쪽 식으로 완전히 재구성해 버린다. 결론은 이것이다. ‘부위별로 해체해 놓으니깐 어때? 이것도 누드야? 누드란 사회적 통념일 뿐이야.’
‘빈집’에 나오는 빈집들에는 예외 없이 단란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그러나 정작 그 가족들은 권태와 배우자의 외도 등으로 극심한 불화를 겪고 있음을 영화는 뒤이어 보여준다. ‘빈집’은 결국 이승연을 대신해 말하는 것이다. “사진은 가짜야. 이미지는 다 가짜야.”
그러나 이승연은 착하다. 사회를 책망하지 않는다. 더 맞겠다고 한다. 태석이 3번 아이언 골프채로 골프공을 날리려 할 때마다 공 앞에 무작정 다가서는 이승연의 모습은 ‘사회에 화내지 마. 차라리 나를 때려줘’라는 메시지를 가진, 피학적 상상력의 극치다.
그럼에도 이승연은 불온하다. 어느 순간 슬쩍 여기서 ‘탈출’하고 심지어 ‘섹스’까지 즐기다가 종국엔 훌쩍 ‘해방’돼 버리니 말이다. 이승연의 이런 ‘엑소더스’ 과정이 집약돼 있는 건 다름 아닌 그녀의 ‘발’이다.
이 영화에서는 이승연의 맨발이 다섯 번 클로즈업된다. 클로즈업의 순간은 여지없이 이승연의 처지가 급변하는 분기점이 된다.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든 채 저울에 오르는 장면(그림1)은 그가 폭력의 피해자임을 나타낸다. 이때 저울바늘은 (실제 이승연의 몸무게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47kg’을 가리킨다. 그가 지고 있는 육체적 고통의 무게다. 이런 이승연의 발 앞으로 태석이 굴린 골프공이 도르르 굴러온다(그림2). 도움의 손길이 뻗쳐왔음을 뜻한다. 이후 태석은 폭력 남편을 응징하고, 쓰러진 남편은 이승연의 발을 잡으며 “가지 말라”고 애원한다(그림3). 이승연은 이를 뿌리치고 자신을 억압했던 집(혹은 사회)으로부터 ‘탈출’한다. 이윽고 단아한 한옥에서 이승연은 왼발을 뻗어 태석의 오른발을 문지르는 ‘발 섹스’(그림4)를 감행한다. 두 사람은 라스트 신에서 부둥켜안고 함께 저울에 오르는데, 이 때 바늘은 ‘0kg’(그림5)을 가리킨다. 이승연은 태석과 완전한 합일(合一)을 이루고, 차라리 유령이 돼 버리는 방식을 통해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미처 몰랐다. 입 다물고 조용히 반성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이승연의 발이 이렇게 수면 밑에서 부단하게 움직이고 있었다니. 이승연이여, 벌써 이 지엄한 사회에 반항하는 건가. 난… 당신의 이런 발칙한 발이 좋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