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왜몰랐을까, 저 넘치는 끼를…염정아의 ‘재발견’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22분


박영대 기자
박영대 기자
《‘재발견’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배우가 있다. 영화배우 염정아(33). 지난해 ‘장화, 홍련’의 신경질적인 새엄마 은주로 시작된 ‘염정아의 재발견’은 올해 ‘범죄의 재구성’의 ‘구로동 샤론 스톤’역에 이어 ‘여선생 vs 여제자’(17일 개봉)의 노처녀 여선생 역을 통해 절정으로 치닫는다. 1991년 미스코리아 선으로 뽑히면서 연예계에 데뷔한 그녀가 12년 만에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10년간 뚝 끊겼던 CF도 최근 두 편이나 찍었다. 1일 ‘여선생…’ 시사회 뒤 그녀를 만났다.》

‘여선생…’은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남자 미술교사 상춘(이지훈)을 둘러싸고 여선생 미옥(염정아)과 당돌한 초등학교 5학년 미남(이세영)이 벌이는 미묘한 신경전을 다룬 코미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철없는 푼수로 그려진 미옥 캐릭터와 교육 현실의 문제점이 어우러지면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 됐다.

천박함과 섹시함이 어우러진 구로동 샤론 스톤을 떠올리다가 미옥을 만나면 놀라게 된다. 얼굴의 잡티가 그대로 드러나는 맨 얼굴에 좌충우돌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팜므 파탈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선생 김봉두’를 만들었던 장규성 감독이 이 작품이 끝날 무렵 염정아를 ‘여자 김봉두’라고 인정했을 정도로 그녀의 변신은 인상적이다.

“미옥이 ‘오버’하는 모습은 사실 제가 엄마랑 있을 때와 비슷해요. 화가 났을 때 팔다리를 바르르 떨고 수다를 떠는 것도 꼭 닮았어요.”

궁금했다. ‘여배우 나이 30대면 이미 환갑’이라는 게 한국적 풍토다. 그녀가 뒤늦게 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숙(46) 이미연(34) 등 30대 이후 다시 인기를 얻고 있는 여배우와는 또 다르다.

염정아는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1년)을 시작으로 수십 편의 드라마와 6편의 영화에 출연했지만 스타로 인정받은 적이 없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스타도 아니고, 스타가 아닌 것도 아닌 채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한번도 팬들의 사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는 그녀의 솔직한 표현은 아프게 들렸다.

“그동안 정말 어디 계셨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저 여기(연예계) 그대로 있었어요. 드라마도 했고. 정말 쉬지 않고 ‘쭉’”이라고 말했다.

‘운’이 좋은 사람임을 자처한 그녀는 그 운이 자신의 몸에 있는 끼를 발산할 수 있도록 해준 좋은 감독과 만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몇 년 전 예쁜 ‘종이인형’ 같다는 말을 듣고는 충격 받고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 자신이 사람 냄새가 덜 난다거나,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가짜 연기’처럼 보인다는 말로 해석했어요.”

172cm, 49kg의 마른 체격과 남성 팬을 끌어당겼던 ‘고양이 눈빛’, 서른셋의 나이. 과거에는 남자 팬이 주로 자신을 좋아했지만 이제 여자 팬도 생겨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미인이 진짜 배우로 바뀌기 위해서는 시간과 쓰디쓴 인생극장의 ‘마법’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영화 속에서 여선생이 애들이 동요 부르는 걸 보다가 ‘니들은 파래서 좋겠다’고 하죠. 미옥이 마음처럼 주름살이 조금 늘어가는 것은 아쉽지만 나이는 연기와 인생을 풍부하게 만듭니다. 저도 이제 미스코리아 출신의 예쁜 연기자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배우에 더 가까워진 것 아닌가요.”

그녀는 10년 전의 젊음이 주어져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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