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만 갖고 보면은 다음달 3일 개봉되는 ‘영 아담(Young Adam)’은 판에 박힌 내용의 에로틱 스릴러다. 나이 든 남편과 성에 굶주린 아내, 싱싱한 젊은 남자가 만드는 삼각구도하며, 조와 살해된 여인의 연관성이 서서히 꺼풀을 벗는 내용이 그렇다.
하지만 뚜껑을 열면 영판 다르다. 이 영화는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느낌도, 스릴러의 생명인 속도감과 반전도, 심지어 야한 이미지도 의도적으로 제거한다. 영화는 사실 살해범이 밝혀지는 과정에 큰 관심이 없다. 숱한 섹스 신에도 정작 ‘유혹’이란 단어는 빠져 있다. 어떤 줄다리기나 거부도 없으며, 반대로 어떤 유희나 열정도 없다.
조와 엘라, 조와 엘라의 친언니, 조와 하숙집 여주인의 섹스를 연달아 쫓아가는 이 영화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조가 벌이는 ‘섹스 오디세이’지만,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바로 ‘성욕’이다. 피할 수 없는 성욕이다. 조의 퀭한 눈, 그의 꾀죄죄하다 못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살갗, 엘라의 겨드랑이에 마구잡이로 난 터럭, 그녀의 투박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젖가슴에 초점을 맞추는 이 영화는 기존의 성적 상징들이 갖는 이미지를 배반해 버린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섹스는 ‘잘 빠진’ 남녀 사이에 오가는 유혹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을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성욕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올란도’ 등의 영화를 통해 주로 중성적인 이미지를 구축해온 틸다 스윈튼을 엘라 역에 기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트럭이라는 새 운송수단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바지선의 고립무원 이미지, 글래스고 운하가 가진 단정하면서도 어딘지 숨 막히는 경치에 이런 전복된 성(性) 이미지들을 중첩시킴으로써 이 영화는 화면 자체로 축축하고 무거운 성욕을 발산한다. 애정행각이 남편에게 발각되는 순간조차 조와 엘라의 반응은 관객의 예상(수선을 떨거나 변명거리를 찾는 등의)을 뒤집는다. 영화는 그러면서 느릿느릿하고 칙칙하고 찐득찐득한 긴장의 행보를 멈추지 않는다.
조와 섹스를 막 마친 엘라의 젖꼭지에 파리가 무심하게 앉아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것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는 인간의 원죄 같은 성욕이 빚어내는 권태롭고 피곤하기 짝이 없는 섹스에 초점을 맞춘다. 조가 상대의 몸에 케첩과 설탕을 퍼붓고 구타를 일삼는 섹스행각을 벌이는 모습이 변태적이기보다 절망적으로 보이는 건 이런 까닭에서다. 성기를 보여주는 게 ‘파격 노출’이라면 ‘이완 맥그리거의 파격 노출’이란 선전 문구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의 축 늘어진 성기는 보는 이를 흥분시키기보다는 측은지심이 들게 만드는 쪽이다.
여자가 섹스하면서 흘리는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참 오랜만에 제대로 말해 주는 영화다. ‘최후의 황무지’의 영국 출신 감독 데이비드 매킨지의 두 번째 장편. 18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