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우리들 속내의 욕망을 꿈틀대게 만든다. ‘6월의 뱀’. 광고 카피도 더할 나위 없이 자극적이다. “그녀는 건조하다.” 하지만 이건 반어(反語)다. 오히려 영화 속에선 계속해서 장맛비가 내린다. 그래서 여주인공은 비에 젖을 때가 많다. 그녀의 몸은 흘리는 땀 때문에 엄청 끈적거리기까지 한다. 몸뿐만이 아니다. 의문의 남자가 해대는 집요하고도 은밀한 위협으로 그녀의 마음은 늘 축축하게 젖어 있다.
심리치료센터에서 전화상담원으로 일하는 린코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중년의 남편 시게히코와 평온하고 풍족한 생활을 해 나간다. 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뿐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이 계속된다. 결벽증이 있는 남편은 집에만 돌아오면 집안을 박박 닦아대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그렇게 매일매일 집안을 닦고 만지면서도 정작 밤이 되면 남편은 아내를 만지지 않는다. 린코는 그런 남편과의 삶이 지루하고 불안하다. 그 때문에 당연히 그녀에게는 비밀이 생긴다. 남편 몰래 혼자서 은밀한 행위를 즐기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쓰던 안경을 벗어 던지고 짙은 아이섀도와 마스카라로 자신을 다르게 분장한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와 남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녀에게 낯선 봉투 하나가 배달된다. 표지엔 이렇게 쓰여 있다. ‘남편에겐 비밀’. 그 안에는 그녀의 은밀한 행위를 낱낱이 기록한 사진들이 담겨 있다. 린코는 그때부터 사진을 보낸 남자의 노예가 되기 시작한다.
쓰카모토 감독의 영화 속 인물들은 늘 질퍽거리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그의 인물들은 기묘한 방식으로만 소통할 뿐 일상은 늘 단절돼 있다. 서로가 서로를 진정으로 교감하지 못한다. 두 명의 복서가, 피어싱에 빠져 자신의 온몸에 피를 철철 내는 여자를 사이에 두고 링 위에서 혈투를 벌이거나(‘동경의 주먹’), 유능한 의사와 거지로 자란 쌍둥이 형제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한 몸 안에 영혼을 합친다(‘쌍생아’). 또 고철로 만들어진 페니스 때문에 한 남자가 세상에 엄청난 참극을 불러일으키고(‘철남’), 주눅 든 채 살아가는 한 소시민은 우연히 총을 손에 넣게 되면서 그토록 피하려 애썼던 세상사의 유혈극에 휘말린다(‘총알발레’).
쓰카모토 감독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일본 사회의 오랜 ‘내부 균열’에 대해 자포자기의 극한 심성이 돼버린 창백한 지식인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런 점에서 쓰카모토 감독은 스스로를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이라고 명명하며 줄곧 변태성욕적인 환상과 죽음의 유혹에 빠진 인물들의 얘기를 그리는 소설가 무라카미 류와 닮았다. 무라카미 류가 섹스에 집중하고 있다면 쓰카모토 감독은 폭력에 더 많은 부분을 할애한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다.
하지만 쓰카모토 감독 역시 자신들이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으며 그건 ‘6월의 뱀’의 린코가 결국 몸 안의 욕정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해방감을 느끼듯이 규격화된 사회로부터 탈피하려는 노력, 일탈의 자유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 그 붕괴를 막을 수 없다고 진단한다.
흑백으로 촬영된 쓰카모토 감독의 새 영화 ‘6월의 뱀’은 그의 다른 영화처럼 보는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카메라는 계속 흔들리고 이야기는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지점, 곧 현실과 환상을 오간다. 비주얼은 감각적이지만 종종 자의식의 과잉이 느껴진다. 그 모든 난이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이번 영화를 통해 쓰카모토 감독이 사람들의 잠자는 욕망을 깨워 일으킨다는 점이다. 한겨울이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축축한 땀이 흐른다. 온몸이 끈적대는 것이 느껴진다. 뱀 한 마리가 슬쩍 몸을 휘감아 오는 느낌이 든다. ‘6월의 뱀’은 오감(五感)이 요구되는 영화다. 12월 10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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