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2(이성재). 국선 변호사. 곱슬머리, 뻐드렁니에 O자형 다리로 늘 엉거주춤한 자세다. 긴장할 때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은 천식으로 인한 호흡곤란과 설사. 주 의뢰인은 시장통 상인과 좀도둑이며 수임료로는 세 들어 사는 서민아파트 월세도 못 내는 처지다. 자가용은 없고 자전거 소유. 주변머리 없다.
30일 개봉되는 영화 ‘신석기 블루스’는 좀 의뭉스럽다. 악덕 변호사의 개과천선이라는 스토리나 반복되는 화장실 신, 광고에조차 패러디됐던 ‘미션 임파서블’의 절도장면 차용, ‘페이스오프’를 연상시키는 혼과 몸뚱이의 뒤바뀜 같은 설정만 염두에 두면 ‘한번 웃자고 만든’ 잡탕형 코미디일 뿐이다. 그러나 낄낄거리던 중 문득 콧등이 찡해진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이 영화로 장편에 데뷔한 김도혁 감독 나름의 허허실실(虛虛實實) 전략 때문이다. 그의 허허실실 전략을 실현하는 인물은 신석기2의 몸으로, 신석기 1의 내면을 연기하는 이성재다. 분장술은 캐릭터를 드러내는 극히 작은 장치일 뿐임을 이성재의 연기는 보여준다.
함께 사고를 겪은 뒤 식물인간이 된 원래의 몸을 빠져나와 신석기 2의 몸에 들어간 신석기 1의 혼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절망이다. 신석기 1에겐 신석기 2의 가난이나 틈만 나면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후비고 무좀 난 발가락 사이를 긁는 버릇 등이 모두 참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언젠가 원래의 몸이 깨어날지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때문에 죽지 못한다.
신석기 1은 또 자신이 휘두른 감원칼날에 직장을 잃은 진영의 변호인이 된다. 최후변론에서 그는 “원고 서진영씨에게 신석기 변호사를 대신해 사과드립니다”라고 자기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아무리 구차해도 인생은 살아봐야 하는 것이며, 진정한 나를 찾는 것은 나를 버림으로써 가능하다는 꽤 무거운 얘기를 감독은 이처럼 코미디의 경계 안에서 슬쩍 던져 놓는다. 삶의 애환을 가벼운 리듬에 싣는 블루스처럼….
‘말죽거리 잔혹사’의 선도반 ‘짱’이었던 신석기 1역의 이종혁은 초반 이후 줄곧 식물인간의 모습만 보여줬다. 하지만 그는 싸늘하고 야비한 미남의 이미지를 충분히 남겼다. 극중 신석기 1이 트럼펫으로 부는 경쾌한 재즈곡은 ‘For Once in My Life’. 15세 이상 관람 가.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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