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저우싱츠의 난감한 웃음코드

  • 입력 2005년 1월 12일 17시 57분



‘웃어야 돼, 울어야 돼?’ 저우싱츠(周星馳) 영화는 늘 이렇게 사람을 난감하게 만든다. 등장인물조차 절대로 웃는 법이 없으니…. 그가 동시다발로 구사하는 유머와 페이소스에는 리샤오룽(李小龍)과 청룽(成龍)이 결코 범접할 수 없는 기발한 이미지 조합과 파괴의 ‘무공’이 숨어있다는 사실. 그가 각본 감독 제작 주연을 겸한 영화 ‘쿵푸 허슬’에 숨어있는 저우싱츠의 유머 코드를 벗겼다.

○늘어진 러닝셔츠 차림의 최고 킬러

①충돌(衝突)=먼저 외모와 능력이 충돌한다. ‘야수’는 ‘아저씨 러닝셔츠’(이른바 ‘백물’) 차림에 초록색 슬리퍼를 발가락에 달랑달랑 걸치고 있는 인물(사진1). 그러나 외모와 달리 두꺼비 포즈로 적을 쳐부수는 강호 최고의 킬러다. 엄청나게 큰 소리로 적을 물리치는 전설적인 비기(秘技) ‘사자후’를 구사하는 여전사는 ‘구르프’를 머리에 만 아줌마다(사진2). 부추를 들고 가던 농사짓는 아줌마는 의외의 강펀치를 날린다. ‘심각한 장면’과 그것이 속해 있는 ‘심각하지 않는 맥락’도 서로 충돌한다. ‘싱’(저우싱츠)이 날린 단도는 천장에 맞고 되돌아와 자신의 어깨에 푹 꽂히는데, 이미지는 섬뜩하지만 그 맥락은 우습다(사진3). ‘능력’과 ‘취향’도 충돌한다. 철권을 휘두르는 양복점 아저씨 ‘테일러’는 알고 보면 셔츠 끝을 리본처럼 동여매고 “몰라, 몰라” 하면서 소녀처럼 뛰는 동성애자다.

○총구 앞에서 총알 잡아내는 ‘내공’

②과장(誇張)=주인장 부부는 가공할만한 부부싸움을 한다. 아내는 남편을 팬 뒤 4층 건물 아래로 던지고 엎어진 남편의 뒤통수에 화분을 던져 마무리를 한다. 킬러인 ‘야수’는 자신의 관자놀이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긴 후 총알이 총구에서 나오는 순간 두 손가락으로 젓가락질 하듯 총알을 탁 잡아채면서 내공을 과시한다. 하늘로 솟아오른 ‘싱’이 마침 지나가는 새의 잔등을 가뿐히 밟고 더 높이 상승하는 모습은 대륙적 허풍의 극치.

○만두피 빚던 막대로 神技의 봉술

③생활(生活)=고수들의 무공은 알고 보니 일상생활이 고스란히 옮겨온 것. 양복점 아저씨 ‘테일러’는 옷걸이에 걸린 링을 모아 팔목에 차고 휘두르는 ‘철권’을 구사하고(사진4), 분식점 아저씨 ‘도넛’은 만두피를 빚던 막대를 휘두르며 신기에 가까운 봉술을 보여준다. “시끄러워!”하고 잔소리만 해대던 주인장 아줌마는 큰 목소리로 적을 물리치는 ‘사자후’의 소유자. 매일 술에 절어 살던 아줌마의 남편은 비실대며 적의 공격을 피하는 ‘유들유들 영춘권’을 구사한다(사진5).

○말뒤집기가 무슨 문제라고 그래

④모순(矛盾)=심각하게 결심을 내뱉은 뒤 1초도 안돼 식언(食言)하는 주인공의 자가당착이 난무한다. ‘싱’은 배가 고프다는 동료 ‘물삼겹’에게 (땅에 떨어진 걸 주워 먹는 거지들을 손으로 가리키며) 소리친다. “저 거지들처럼 살래?” 하지만 말을 끝내자마자 ‘싱’은 자기 옆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주워 입에 문다. “난 반드시 무술의 달인이 될 거야”하고 두 주먹 불끈 쥔 직후에도 “앗, 초콜릿이다”하면서 아이스크림 리어카를 졸졸 쫓아간다. 이런 자가당착은 긴장된 국면을 전환하는 호흡조절의 역할도 한다는 사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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