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한 남자의 의식세계를 기록한 내용이다. 정신질환자인 클레그(랠프 파인즈)는 오랫동안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에 앞서 일정한 적응기를 갖기 위해 일단 요양원에 머물게 된다. 지저분한 몰골, 가방과 주머니를 꽉꽉 채우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들. 요양원에서 클레그는 다시 분열증이 심해지게 된다.
클레그는 자신을 아직도 열 살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의식 속에서는 과거의 끔찍했던 기억들이 마치 퍼즐의 조각 하나하나처럼 이리저리 순서 없이 펼쳐진다. 배관공이었던 아버지와 정숙한 어머니의 이유 모를 불화, 술집에 있는 아버지를 데리러 갔다가 목격한 금발의 창녀, 아버지와 그 창녀와의 정사현장, 어느 날 어머니 대신 주방에서 일하고 있는 창녀,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는 장면, 아버지와 금발 창녀와의 이어지는 음탕한 생활. 결국 이 어린 소년은 어머니를 죽게 한 장본인인 금발의 창녀를 살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고 이를 성공시킨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정작 죽은 사람은, 이미 살해됐다고 생각했던 자신의 어머니다. 어머니의 시체 앞에서 아버지는 울부짖는다. “너는 네 엄마를 죽였어!”
어머니를 죽인 사람은 과연 아버지와 금발의 창녀인가. 아니면 클레그의 환상인가. 현실과 환각을 넘나드는 이 이야기에는 진실이 없다. 아니 진실이 별 의미가 없다. 아버지의 추악한 통정(通情)이 빚어낸 치정극이든, 아니면 끔찍한 환상이 빚은 존속살인극이든, 모두들 인간의 가늠할 수 없는 비뚤어진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육감적인 창녀와의 섹스를 위해 어머니를 살해할 것을 꿈꿨을 수 있다. 반면 열 살짜리 소년은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으로 얘기했던 것처럼 어머니와의 섹스를 꿈꾸며 친아버지와의 관계를 전복시키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크로넨버그가 그리려 했던 것은 단순하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실현이 아니다. 그보다 그는, 거미줄처럼 빡빡한 틀 안에 갇혀 사는 사람처럼 극단적으로 고립됨으로써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현대인들의 내면풍경을 담아냈다. 그런데 이건 더 이상의 채색이 불가능한 흑백 풍경화다. 크로넨버그는 우리의 정신세계는 그처럼 이미 회복 불가능한 지점을 지났을지 모른다며, 불안하고 예민한 촉수로 세상을 더듬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의 신경증과 강박증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바람에 마치 걷어내도 걷어내도 계속해서 안면에 거미줄이 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우 불편하고 찝찝하지만 그 같은 극단의 현실감은 결국 극장 바깥의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강박증과 환영에 시달리는 정신병자 역 랠프 파인즈의 연기가 압권이다. 정숙한 어머니와 금발의 창녀, 요양원의 원장까지 1인 3역을 해낸 미란다 리처드슨의 연기는 감동까지 준다.
‘데드 링거’에서 ‘플라이’ ‘크래시’에 이르기까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곤충, 혹은 사람과 기계의 이종교배가 빚어내는 이상한 공포를 즐기던 크로넨버그가 이번엔 정색하고 사람과 사회와 인류를 걱정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걱정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 영화는 전국에서 단 하나의 극장,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된다. 2002년 작. 18세 이상 관람 가. 11일 개봉.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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