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영화 ‘주먹이 운다’…삶의 끝에서 세상과 한판 붙다

  • 입력 2005년 3월 16일 17시 30분



《‘주먹이 운다’는 수컷의 영화다.

동굴에서 살며 들짐승과 사투를 벌여 먹을 것을 구해 오고 처자를 부양하던 원초적 남성성의 회복을 영화 속 남자들은 희구한다. 영화는 더 이상 버틸 곳 없는 삶의 끝자락에서 아등바등하다 남성성을 잃어버린 두 남자의 ‘자기 존재 증명’이다.》

● 링에선 주먹만으로 된다. 그러나 사회에선 주먹만으로 되는 일이 없다

위험에 처한 사람이 자기방어를 위해 가장 먼저 취하는 동작은 두 주먹을 불끈 쥐는 것. 다만 주먹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의 강자가 아니다. 19세 유상환(류승범)은 할머니(나문희)와 함께 살며 자동차오디오를 훔쳐 마련한 돈이나 동네 아이들을 쥐어박아 뜯어낸 푼돈을 용돈으로 삼는 건달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대회 복싱 은메달리스트인 42세 강태식(최민식)은 끊임없이 사기를 당하고, 운영하던 무허가 공장마저 불에 타버린 뒤 집에는 차압이 들어온다.

자신이 저지른 폭행사건의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일수쟁이의 돈 가방을 빼앗다가 소년원에 들어가는 상환과, 아내(서혜린)와 아들(이준구)을 처가에 보내고 자신은 비루한 옥탑방에 살면서 거리에서 매를 맞는 일로 돈을 벌려는 태식에게 가장 먼저 닥치는 일은 ‘쪽팔림’이다.

소년원에 들어가자마자 싸움을 벌여 자신이 귀를 물어뜯은 권투부 유망주와 권투로 맞붙어 처참하게 깨진 뒤 상환은 “아이 씨, 쪽팔려”를 부르짖고, 지하철역 광장에서 주저하던 태식은 “가오(체면)가 중요하느냐”며 메가폰을 잡고 ‘맞아드리겠다’고 외친다.

쪽팔려서 권투를 하게 된 상환과 쪽팔림을 무릅쓰고 인간 샌드백으로 연명하는 태식에게 남성의 본능을 불러내는 것은 가족이다. 집 밖을 전전하던 아버지(기주봉)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상환으로 하여금 할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고, 자신의 어린 아들이 아버지가 맞아서 돈을 버는 모습을 지켜본 사실을 알게 된 태식은 가족을 되찾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이제 권투뿐이다.

● 교도소 출신 복서-인간 샌드백 실제인물 모델로 만들어

권투 신인왕전에 출전하기 전 이들은 진정한 남성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를 치른다. 상환은 자신이 귀를 물어뜯은 권투부 유망주와 경기를 해 해 KO로 이기고, 태식은 자신을 괴롭히고 소중한 은메달을 가져간 후배이자 건달 용대(오달수)를 때려눕힌다. “선배한테 욕하고 반말하는 거 아니다.”

결승전에서 맞붙어 6라운드를 싸운 뒤, 피가 흐르고 눈두덩이 부은 얼굴로 각자의 코너에 주저앉은 상환과 태식에게 승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졌든 이겼든 그들에게는 남성으로서 책임질 가족이 다시 생겼기 때문이다. 맨주먹만으로는 버틸 수 없어 눈물을 흘렸던 그들은 자신의 주먹, 남성성을 다시 인정받는 링 위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주먹이 운다’의 상환은 실제 교도소 출신 복서를, 태식은 일본에서 실제 인간 샌드백으로 사는 하레루야 아키라라는 사람을 모델로 했다. 카메라는 사건이 아닌 인물의 감정을 따라 거칠게 움직인다. 그래서 류승완 감독의 화려한 테크닉과 스타일은 보이지 않는다. 4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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