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도처에 殺氣… 섬뜩한 10대들의 인질극

  • 입력 2005년 3월 16일 17시 54분


2개의 서로 다른 인질극을 교차시키는 범죄액션스릴러 ‘호스티지’. 주연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연기가 돋보인다. 사진 제공 영화인
2개의 서로 다른 인질극을 교차시키는 범죄액션스릴러 ‘호스티지’. 주연을 맡은 브루스 윌리스의 자의식을 드러내는 연기가 돋보인다. 사진 제공 영화인
우리가 숨쉬는 공기 같은 배우가 브루스 윌리스다. 흔해서 그 소중함을 잘 모르는 것이다. 18일 개봉되는 ‘호스티지(Hostage)’는 데뷔 이후 20여 년간 4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그가 왜 40여 편의 영화에 선택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증명한다. 범죄 액션스릴러라는 굳어진 장르의 틀 속에서 그는 어떤 심리극도 능가할 만큼 깊은 자의식을 드러낸다. 브루스 윌리스는 관습을 피하기보다 남김없이 먹어치움으로써 관습을 극복하는 배우다.

○조용한 마을에 나타난 ‘아마추어’ 인질범들

미국 로스앤젤레스 최고의 인질범 협상가(니고시에이터) 탤리. 실수로 인질들을 몰살시킨 뒤 죄책감에 빠진 그는 시골 마을의 경찰서장으로 숨어살다시피 한다. 조용하던 마을에 사건이 터진다. 스미스라는 회계 전문가의 호화저택에 10대 좀도둑 3명이 들어갔다가 인질극으로 확대된 것. 이때 탤리는 자신의 가족이 인질로 잡혀있다는 전화를 괴한들로부터 받는다. 극비 정보가 숨겨진 DVD를 저택 안에서 빼내오지 않으면 가족을 죽이겠다는 협박. 탤리는 인질극의 해결사이자 피해자인 절망적 상황에 놓인다.

‘브루스 윌리스가 또 경찰로 나오는 뻔한 액션영화’를 예상했다간 초장부터 이 영화의 무게에 가슴이 짓눌릴지 모른다. 이 영화는 새롭지 않지만 새롭다. 범인이 피해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치고, 묶인 인질이 공포에 떨고, 협상가가 인질범과 위태로운 거래를 통해 거리를 좁혀가고, 인질범들이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장르영화에선 관습적이랄 수 있는 장면들이 새삼스럽게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총알 한방 한방이 마치 관객의 심장을 뚫고 지나가는 듯한 개인적 경험을 던져주는 것이다.


끔찍한 호러 영화에서와 같은 살기(殺氣)가 화면 전체에 줄줄 흐른다. 이 살기는 상당 부분 풋내기 10대 범죄자들의 무계획성과 돌발성에서 나온다. 탤리(아니 브루스 윌리스)가 지금껏 맞서 본 악당 중 가장 ‘아마추어’일 것으로 보이는 이들 세 명은 어떤 동기나 훈련된 행동도 없는 데다 그들 스스로 겁을 집어먹고 있어 더 위협적이고 살벌하다. 3인조 중 한 명인 ‘마스’의 최후는 어떤 호러 영화 속 악당의 최후보다 더 찝찝한 뒷맛을 남긴다.

○2개의 인질극, 얽히고설키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이런 끔찍한 최후를 자처하거나 혹은 얼굴 모를 괴한들이 DVD를 손에 넣으려고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행위들에 대해 관객이 ‘왜?’란 질문을 하게 된다는 데 있다. 2개의 인질극을 씨줄날줄로 엮는 이 영화는 할 수 있는 이야기의 공간에 비해 하려는 이야기의 내용과 수가 차고 넘친다.

이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인상적 행위를 뒷받침할 만한 개인적 사연이 증발된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이미지 과잉’인 듯한 인상을 던져주는 건 이 때문이다. 이 영화는 인질 협상가인 탤리가 사건을 전문가적이고 계획적으로 풀어낼 거라는 관객의 기대와 달리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사건 속에 클라이맥스를 묻어버림으로써 사건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초반의 주도면밀함을 이어 나가지 못한다.

브루스 윌리스는 ‘다이 하드’에서처럼 이 영화에서도 가족을 구한다. 하지만 여기서 그는 ‘영웅’이 되기보다 내면에 깃든 상처를 다시 보듬는 쓸쓸한 결말을 택한다. 그가 바로 지난해 ‘나인야드 2’ 같은 시답잖고 유치한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이 정말 믿고 싶지 않다.

‘네스트’를 연출한 플로언트 시리 감독의 두 번째 장편. 15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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