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파일]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 ‘몽상가들’

  • 입력 2005년 3월 17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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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프리비전
사진 제공 프리비전
주옥같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면 바로 이 영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몽상가들’을 두고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전체에 그야말로 영롱한 스피릿의 결정체 같은 것이 흐르는 것 같다.

‘몽상가들’은 한 영화광 감독의 영화에 대한 애정 고백서이자, 한 지식인의 치열했던 시대에 대한 기록이며, 말년으로 다가서고 있는 한 남자의 애처로운 청춘 회고담이다.

‘몽상가들’은 1968년, 베트남전쟁 징집을 피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 온 매튜가 테오와 이사벨이라는 이름의 쌍둥이 남매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첫 장면에서 이들 셋이 만나는 장소는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배경이 된다. 매튜와 이사벨, 그리고 테오는 파리 시네마테크 원장의 해임에 항의하는 시위 현장에서 부딪친다. 당시 파리는 68혁명의 기운으로 들끓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파리 거리혁명의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이들 셋은 마치 구순기의 아이들처럼 야릇한 삼각 동거에 들어간다.

베르톨루치는 평생을 영화에만 헌신하며, 종종 혼란에 싸이긴 했지만 그래도 평생을 정서적 좌파로 살아 온 인물이다. 그런 베르톨루치가 이번 영화를 만든 의도는 주요 인물의 설정에서만도 알 수 있다. 이사벨을 둘러싼 매튜와 테오, 두 남자의 모습은 프랑스 누벨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가 1961년에 창조해 낸 인물 줄과 짐을 쏙 빼닮아 있다. 특히 이 영화의 이사벨은 영화 ‘줄 앤 짐’에서 카트린의 모습과 완전히 판박이다. ‘몽상가들’은 ‘줄 앤 짐’의 빼어난 유전복제와 같은 영화다. 그렇다면 왜 베르톨루치는 줄과 짐, 그리고 카트린(잔 모로)과 같은 인물을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번 만들어 내려 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베르톨루치는 왜 1960년대로, 특히 1968년의 특정 과거로 돌아가려고 했던 것일까.

1968년은 상상력 하나만으로 세계를 전복하려 했던 젊은이들이 살았던 시대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기, 자유와 진보의 물결이 넘쳐났던 당시 학생운동의 슬로건 가운데는 심지어 ‘예정조화설을 거부하자!’ 같은 것이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관념적이고 몽상가적이었지만 또 그만큼 순수한 권력을 꿈꿨던 시대도 없다는 얘기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그의 저서 ‘신좌파의 상상력’에서 당시 1968년의 폭발적 혁명을 ‘에로스 이펙트’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에의 자각이 당대의 사회적 현실을 뛰어 넘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나가도록 했다는 것이다. 실제 68혁명의 정신은 유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무라카미 류 역시 당시를 회고하는 소설 ‘69’에서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고 썼다. 베르톨루치는 바로 그렇게 상상력이 풍부하다 못해 끓어 넘쳤던 시대에 대한 추억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또 그 같은 상상력이야말로 자신이 평생 이루려고 하는 영화적 꿈의 원천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건 또 뒤집어보면 지금이야말로 상상력이 고갈된 시대이고, 따라서 진정한 영화예술을 찾아 볼 수 없음을 한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광의 영화답게 ‘몽상가들’에는 베르톨루치가 사랑하고 또 경배를 바치고자 하는 고전 필름들의 명장면들과 음악이 가득 차 있다. 트뤼포의 ‘줄 앤 짐’에서 줄과 짐, 그리고 카트린이 루브르 박물관 실내를 질주하는 장면을 비롯해서 그레타 가르보가 나왔던 ‘크리스티나 여왕’과 찰리 채플린의 ‘시티 라이트’, 마를렌 디트리히의 ‘금발의 비너스’, 그리고 하워드 혹스 감독의 ‘스카페이스’ 등등 ‘몽상가들’은 마치 한 권의 정통 영화교재처럼 느껴질 정도다. 특히 ‘줄 앤 짐’의 몇몇 장면들은 이번 영화의 주인공 셋이 종종 그대로 재현해 내는데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들이 뛰어가는 장면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1960년대 흑백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건 곧 1960년대가 그리 멀지 않았던 시대임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정신이 살아있던 시대임을 느끼게 한다. 지미 핸드릭스의 ‘서드 스톤 프롬 더 선’이나 도어스의 ‘더 스파이’, 에디트 피아프의 ‘농 주 느 르그레트 리앙(나는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등 당시 유행했던 전설적 팝과 샹송 역시 영화를 보고나서도 한동안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모든 권위와 박제화한 관습, 허위의식을 깨뜨리려 했던 시대를 그리는 만큼 이 영화에는 여느 영화들과는 다른 누드신과 섹스신, 근친상간과 같은 기묘한 관계들이 이어진다. 이 영화가 2003년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2년이나 늦게 소개됐다. 상업성이 전무하다는 고민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성기노출, 실연에 가까운 섹스장면 등 표현수위가 만만치 않아 심의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국내 개봉에는 단 한 장면도 삭제되지 않았다. 25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 가.

오동진 영화평론가 ohdji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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