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예진(23)은 “천사라서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가지 않지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손예진. 한국의 대표적인 ‘멜로 퀸’. 차태현(‘연애소설’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조인성 조승우(‘클래식’), 정우성(‘내 머리 속의 지우개’) 등 인기 절정의 남자 스타들과 번갈아 파트너가 되면서 ‘눈물’과 ‘상처’의 대명사가 된 배우.
이번엔 배용준과 함께, 한국 일본 대만 등 아시아 7개국에서 동시 개봉될 영화 ‘외출’(9월 9일 개봉)의 주인공으로 낙점돼 그녀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용사마의 파트너’에 대한 일본의 관심은 특히 대단해서, 28일 일본 도쿄 롯폰기에서 열리는 손예진의 첫 일본 팬 미팅 입장권 700장은 예매 시작 5분 만에 매진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손예진을 최근 서울 홍익대 근처의 한 이탈리아 음식점에서 만났다.
▽기자=스물세 살에 두 번째 유부녀 연기예요.
▽손=제대로 된 유부녀는 이번이 처음이에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 때는 데이트하다가 결혼했으니까요. 한 스물여섯 살 정도 먹은 새댁 느낌으로 했어요. ‘내가 조금 일찍 시집갔다고 생각하지, 뭐’ 이렇게 마음먹었어요. 호호.
영화 ‘외출’은 배우자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병원에서 만나게 된 두 남녀가 배우자들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다는 내용. 두 남녀 또한 금지된 사랑에 빠져든다. 손예진은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동시에 ‘어느 새 나도 남편과 똑같은 외도를 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섞인 감정을 표현하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기자=출연작 중에 ‘18세 이상’ 영화는 한 편도 없었어요. 이번엔 야한가요.
▽손=대학생의 사랑도 아니고, 결혼한 남녀 간의 사랑이잖아요? 성(性)이라는 부분, 서로의 몸이라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서로의 몸을 느낀다든가 바라본다든가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베드 신이)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프게 나왔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기자=섹시한 이미지로의 변신은 언제쯤…
▽손=사실 저 보고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호호. 근데 모든 여자는 섹시한 부분을 다 갖고 있거든요. 저도 나름대로 그런 걸 갖고 있고요. 일반적으로 섹시하다는 말은 글래머에 뭐, ‘쭉쭉 빵빵’을 (웃음) 생각하지만, 내가 느끼는 섹시함은, 뭐랄까, 깊이 있는…. 아이, 잘 모르겠어요.
▽기자=예를 들어 전지현 씨는 털털한 느낌이니까 남자도 여자도 비슷하게 좋아해요. 하지만 예진 씨는 남자들이 미치도록 좋아하는 반면, 여자들은 일단 미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손=(웃으며) 쉽게 말해서 제가 ‘내숭’이라는 거죠?
▽기자=아, 예. 실제로 ‘내숭’인가요?
▽손=실제론 내숭이 굉장히 없어요. 솔직해요. 하지만 배우는 자기 혼자만의 몸이 아니잖아요. 내가 힘들어도 웃으면서 인사해 줘야 할 때도 있고…. 그 ‘안티’라는 게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나 쟤 그냥 싫어’ 하는 느낌의 것도 있거든요. 제 경우엔 이런 게(후자) 좀 더 많다고 들어서. 제가 여리고 청순가련형, 비련의 여주인공형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아마 여자들은 ‘아이, 저런 게 어디 있어. 말도 안돼’ 할 수 있거든요. 여자들은 남자보다 훨씬 현실적이니까요. 여자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남자들은 동화적인 환상을 꿈꾸죠.
(손예진은 정말 솔직한 여자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 말을 듣고 여자들이 또 얄미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모차렐라 치즈가 든 바질 향이 나는 피자 조각을 집어 드는 그녀의 손가락은 마치 종이비행기를 살짝 집어 드는 듯한 포즈였다.)
▽기자=귀 뒤로 머리를 넘기는 모습이 너무 예뻐요. 무표정으로 눈물을 글썽이는 촉촉한 모습도요. 혹시 거울 보고 연습하나요?
▽손=하하하. 어떤 날은 문득 슬픈 표정을 지어야지, 예쁜 표정을 지어야지, 입을 약간 벌려야지, 사실 이런 생각을 미리 할 때가 있어요. 하지만 얼굴 근육으로 만들어지는 표정과 마음에서 나오는 표정은 달라요. 그런 표정은 감정에서 나오는 거 같아요. 카메라 앞에 섰을 때 저조차도 못 느끼는….
이 영화에서 ‘외출’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손예진은 “아마 ‘마음의 외출’이 아닐까요. 뭔가 두려움과 설렘이 섞인…”이라고 했다. “손예진의 인생에 있어서 ‘외출’은 언제였나”라는 질문에는 “으음, 아직까지 없었어요. 나를 벗어던진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그녀의 ‘외출’이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그 ‘외출’이 왠지 기다려졌다.
▼손예진이 말하는 남자▼
손예진은 지금껏 영화에서 함께 연기했던 남자 톱스타들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연애소설’(2002년)과 ‘첫 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년)의 차태현(29)=태현 오빠는 되게 밝아요. 연기자로서 타고난 게 있고요.
♥‘클래식’(2003년)의 조승우(25) 조인성(24)=조승우 씨는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근데 왠지 아저씨 같고 푸근하고 편해요. 조인성 씨는 저와 성격이 비슷한 면이 있어서 쉽게 친해지질 못했어요. 겉으로 보기엔 차가운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남자다웠어요.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년)의 정우성(32)=정우성 선배님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인 거 같아요.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강하고요.
♥‘외출’(2005년)의 배용준(33)=배용준 선배님은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이 배우를 떠나 인간으로서 성숙한 느낌이에요. 자상해요. 섬세하면서도 남자다운 강한 면이 있어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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