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1일 개봉하는 공포영화 ‘분홍신’에서 모성과 여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30대 중반의 선재 역을 맡은 그는 ‘연기파 김혜수’로 불리기에 충분한 연기를 펼쳤다.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퓨전 중국음식점에서 김혜수를 만났다. 가슴 윗부분이 절반가량이나 드러나는 블라우스에 핫팬츠를 입고 나타난 김혜수는 사진 촬영을 위해 몸의 곡선이 드러나는 기하학적 무늬의 흰 원피스로 갈아입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풍요로웠다.
“저 사실, 공포영화 무서워서 못 봐요. ‘분홍신’이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 첫 공포영화예요.”
그러나 눈이 큰 김혜수는 ‘쓰리: 메모리즈’(2002년), ‘얼굴 없는 미녀’(2004년)에 이어 세 작품 내리 ‘호러 미스터리’ 영화에 출연했다. 복잡한 내면과 심리적 분열, 다중 인격으로 상징되는 캐릭터들이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다 타이밍인 것 같아요. 20대에 이런 역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 자신 없었을 거예요. 어느 순간 그런 역을 원하게 됐고, 100%는 아니지만 내 속에서 (그 캐릭터를) 끌어낼 수 있을 때가 지금인 거죠.”
1985년 태권도를 할 줄 아는 예쁜 여중생이라는 이유로 CF에 캐스팅됐던 김혜수는 그 길로 연기자가 됐다. 16세에 TV드라마 ‘사모곡’에서 탤런트 길용우의 아내 역할도 했다. 20대 초반까지 그가 맡은 역은 주로 남자에게 버림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어요. 방송국이나 영화사 ‘높은 사람들’이 엄마를 통해 하도 부탁하니까 거절할 수 없어 했던 역들이에요. 그게 대중의 요구였어요. 지금이라면 안 하죠. 저는 그런 여자 싫어하니까.”
이후 ‘신세대’ 젊은이들이 어설프게 등장하는 영화나, ‘찜’(1998) 같은 로맨틱 코미디에 출연했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한다고 하다보니 그렇게 돌아갔다”고 그는 말했다.
“대중이 원하는 내 모습과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이 너무 달라서 괴로웠던 시간이었죠. 배우로서 내가 원하는 것과 인간 김혜수의 자아를 찾기 위해 절충했던 시간이 1990년대였어요.”
대중은 김혜수의 연기 대신 이번 영화제 시상식에는 김혜수가 얼마나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가에 더 관심을 보였다.
“제가 편하고 좋으니까 입는 거지요. 옷 입는 것은 여성의 사소한 취향일 뿐이에요. 한때는 그런 반응이 서운했고 반발도 했지요.”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한국 여배우 중 가장 관능적일 수 있는 배우로 김혜수를 꼽았다. 그러나 김혜수는 그런 관능미를 스크린에서 표현해본 적이 없다.
“진짜 관능은 비주얼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배우가 그걸 내포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갖춰진 배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혜수는 “겸손한 척 제스처 쓰는 사람이 거만한 사람보다 더 싫다”는 등 인터뷰 내내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그러나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는’이라는 말을 쓰며 유보적인 모습을 보였다.
“진짜 잘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일부러 주지 않아도 원하는 사람은 그의 영향을 다 받는 그런 사람이요.”
그는 ‘아직까지는’ 배우 김혜수보다 인간 김혜수 찾기에 더 기울어 있는 듯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분홍신’은… 분홍신을 둘러싼 탐욕과 원한 그리고 죽음▼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30대 중반의 안과의사 선재(김혜수)의 유일한 낙은 아름다운 구두를 모으는 것. 남편의 외도를 안 선재는 여섯 살배기 딸 태수(박연아)와 집을 나온다. 선재가 우연히 지하철 안에서 주운 굽 낮은 분홍신을 딸 태수가 집요하게 달라고 한다. 어느 날 태수의 손에서 분홍신을 빼앗아 신고 나간 선재의 후배 노처녀 미희가 발목이 잘린 채 살해당한다. 분홍신을 둘러싸고 죽음과 원한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영화 ‘분홍신’(감독 김용균)은 질투와 탐욕의 한이 서린 분홍신을 소재로 한 공포영화다. 김혜수는 몇 드럼이 넘는 피(특수처리 된) 세례를 온몸에 두 번이나 맞아야 했고, 개통 직전의 지하철 역 촬영 때는 열이 39.8도까지 오르는 감기몸살과 인후염, 기관지염으로 이틀 동안 드러누웠다.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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