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크맘베토프=모스크바 거리에서 무엇에 끌렸는지 ‘쉬리’ 불법DVD를 사서 봤다. 처음 본 한국영화였는데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재미있고 인상적이었다.
▽강제규=고맙다. ‘나이트 워치’는 이야기나 판타지 스릴러라는 장르, 컴퓨터그래픽(CG)을 많이 사용한 방식 등이 기존 러시아 영화와 상당히 다르다.
▽베크맘베토프=러시아적인 전통과 역사를 담되 표현수단은 전혀 러시아적이지 않은 판타지를 사용했다. 새로운 영화 언어를 알고 있던 젊은 층에 잘 먹혔다. 그동안 러시아에 판타지 영화가 없었던 것은 공산주의 자체가 끔찍한 판타지였기 때문이다. 스탈린 1인이 뭘 먹고, 뭘 입고, 뭘 할지 대중의 생활양식을 결정했다는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판타지다. 북한도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 한다.
▽베크맘베토프=어젯밤 숙소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며 강 감독이 부러웠다. 자신의 메시지를 남김없이 다 보여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만약 ‘태극기 휘날리며’가 러시아에서 만들어져 개봉됐다면 ‘나이트 워치’의 2배 이상 흥행에 성공했을 것이다.
▽강=‘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이 규모가 큰 영화를 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내 표현 영역을 더 넓히기 위해서다. 상업적 성공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 필요할 뿐이다.
▽강=러시아뿐만 아니라 대만과 유럽 각국 영화의 침체도 같은 이유다. ‘내 영화를 유럽 영화제나 평론가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러시아 감독을 만나 행복하다. 생각이 나와 너무 똑같아서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다.(웃음)
▽베크맘베토프=내년에 미국에서 두 가지 프로젝트를 한다. 우선 미국 배우들을 써서 판타지 스릴러를 만들 예정이다. 또 미국의 젊은 감독이 만드는 3D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 할리우드는 ‘신선한 피’를 원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들도 우리의 경험이나 그들이 갖지 못한 창의력 등을 필요로 한다. 미국 20세기폭스사와 일하게 됐는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약속을 받아 냈다. 할리우드에 가더라도 내 고유의 것을 지키는 것, 이것이 원칙이다.
▽강=현재 미국의 한 제작사와 공동제작으로 SF영화를 추진 중이다. 8월 말 경 시나리오가 끝나면 미국 배우들을 캐스팅해 연말에는 제작에 들어간다. 단순하게 할리우드에서 감독한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은 매력적이지 않다. 주된 관심은 오직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데 그게 할리우드라면 같이 한다는 거다. 예전에는 제작 메커니즘이나 테크놀로지 등에서 할리우드만이 갖는 특권이 있었지만 디지털시대로 오면서 해체됐다. 지금은 창의력 있는 사람이 주인이다. 영화제작도 마찬가지다.
▽베크맘베토프=당신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강=내년에 할리우드에서 시간 나면 가끔 만나자.
▽베크맘베토프=기다리겠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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