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오셨나요? 오늘은 취재 안 됩니다.”
촬영장은 철통 보안이었다. “결말이 미리 새 나가서는 안 된다”는 걱정 때문에 스태프는 낯선 사람의 출입을 통제했다.
“레디. 액션!”
마침내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김선아, 아니 김삼순이 피아노 앞에 앉아 올드 팝 ‘캔트 헬프 폴링 인 러브’를 천천히 쳐 나가기 시작했다. 연주는 물 흐르듯 했지만 기술 파트의 실수로 잠깐 “컷”이 선언됐다.
두 주연 배우 사이에 오간 대사는 없었다. 삼순이 특유의 애교 섞인 웃음으로 앞에 앉은 진헌을 지그시 바라보자 짝을 이뤄 진한분홍색 셔츠를 입은 ‘삼식이’ 현빈 역시 김삼순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아악∼ 끝났어, 끝났어.”
촬영 시작 1시간 반. 마침내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 삼순은 기쁨 반 아쉬움 반의 목소리로 “으악”하며 뛰어내렸다. 서로 “수고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던 출연진과 스태프는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느라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다. 두 주인공 김선아와 현빈은 레스토랑 테이블에 매직으로 기념 사인을 하고 있었다. 극 중 ‘보나빼띠’라는 이름으로 불린 이 레스토랑은 삼순과 진헌 두 사람을 이어준 공간이다.
“다들 피로해소제 하나씩 드세요. 제가 사왔어요. 우히히.”(김선아)
“현빈아, 나 사인 해 주고 가. 그냥 가지 말아.”(극 중 나 사장 역 나문희)
“아, 그럼요. 저 탁자에 기념 사인 마치고 해드릴게요.”(현빈)
오후 2시 반, 김선아를 비롯해 출연진과 스태프 일부는 경기 양주시 MBC문화동산에서 진행될 촬영을 위해 주섬주섬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20일 인터넷과 입소문으로 ‘마지막 촬영은 삼순과 진헌 두 사람의 합방이며, 삼식이 코피를 흘리는 코믹한 모습이 엔딩 장면이다’ 등 그럴듯한 시나리오들이 떠돌았다. 그러나 마지막 촬영지는 의외의 곳이 될 전망이다. 한 제작진은 “방영 직전인 21일 오후 서울 남산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엔딩 신이 촬영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시청자 웃고 울린 삼순이 어록▼
“몸이 마음에게 물었다. 난 아프면 의사가 고쳐주지만, 넌 아프면 어떻게 하니? 마음이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 치료해야 돼.”
실연 당한 김삼순이 밀가루 반죽을 하며 독백하는 대사다.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인기비결은 재치있는 대사들에 있다. 이른바 ‘삼순 삼식 어록’이 떠돌 정도다.
삼순이 어록의 힘은 아무렇게나 툭툭 던지듯이 하는 말에 사랑과 삶에 대한 가볍지 않은 성찰이 스며 있다는 점. 로맨틱 코미디의 외피를 썼지만 사랑의 허무함을 꿰뚫는 냉철함이 번득인다. 시청자들이 추천한 명대사들을 살펴봤다.
○죽을 걸 알면서 살잖아…
“그래. 지금은 반짝반짝 하겠지. 그치만 시간이 가면 다 똑같애. 지금 아무리 반짝거려 보여도 시간이 가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구. 지금 우리처럼…그래도 갈래?”(희진)
“사람들은…죽을 걸 알면서 살잖아….”(진헌)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미안해. 아부지… 서른이 되면 안 그럴 줄 알았다. 가슴 두근거릴 일도 없구, 전화 기다리느라 밤샐 일두 없구,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데… 또 누굴 이렇게 좋아하는 내가 너무 끔찍해 죽겠어. 아주.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아부지….”
○머리 굴리지 말고 그냥 딱 떠오르는 생각을 말해!
“너, 나 좋아해. 오늘 너 얼마나 수상한지 알어?”(삼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는 진헌에게 삼순이 묻는다. 당황하며 전혀 자기 타입이 아니라고 거짓말하는 진헌에게 삼순은 말한다.)
“너도 내 타입 아냐. 왠 줄 알어? 솔직하지 못하거든.”
○내 사랑이 여기까지인데 왜 여기까지냐고 물으면 나 어떻게 해야 하니?
“사랑했다. 볼이 통통한 여자 애를, 세계 최고의 파티시에가 되겠다고 파리 시내의 베이커리란 베이커리는 다 찾아다녔던 꿈 많고 열정적이고 항상 달콤한 냄새를 묻히고 다니는 여자애를 사랑했다… 미안하다. 여기까지라서….”(현우)
○사랑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가여워 운다.
“이 세상 주인공이 나였던 시절도 있는데. 내가 우는 것은 그가 떠나서가 아니라 사랑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가여워서 운다.”(삼순)
(현우에게 버림받은 삼순의 독백. 한 번쯤 사랑과 이별을 겪어 본 사람들이 삼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결정적인 대사라는 평.)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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