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영화 ‘그림형제’ 주인공 美현지 인터뷰

  • 입력 2005년 8월 18일 03시 08분


《어쩌면 영화 속 이미지와 이렇게 똑같을까. ‘12 몽키즈’ ‘피셔 킹’을 연출한 테리 길리엄 감독의 신작 ‘그림 형제(Brothers Grimm)’에 출연한 맷 데이먼(35)과 모니카 벨루치(37). 그들의 실제 모습은 영화 속 배역과 99% 겹쳐졌다.

맷 데이먼은 재미있는 사람인 척했지만 결국 엄청나게 진지했고, 모니카 벨루치는 향기로운 체했지만 악마적인 뭔가가 있었다.

지난주 미국 로스앤젤레스 포 시즌 호텔에서 모니카 벨루치와 맷 데이먼을 한국의 일간지로는 유일하게 만났다.》

○모니카 벨루치“어두운 것에 끌리는걸 보면 난 분명 나쁜여자인가봐요”

이탈리아 배우 모니카 벨루치는 인터뷰 내내 오른쪽 어깨 위로 늘어뜨린 말총 같은 머리카락을 우아하게 쓰다듬었다. 그녀에게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여자들은 모두 어리고 날씬하고 아름답고 평생 살기를 바라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이 문제에 우리는 부닥쳐 보아야 해요. 이 문제는 유럽보다는 할리우드 배우들한테 더 심각해요. 카트린 드뇌브나 이자벨 위페르 같은 유럽 여배우들은 나이가 들면서도 강하고 관능적인 역할을 해내죠. 하지만 미국에선 연기보다 겉모습에 더 신경을 써요. 결국 할리우드엔 더 어린 배우들만 존재하게 되죠.”

“성형수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나는 나이를 먹더라도 강하고 현명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알쏭달쏭하게 답했다. 실제 그녀의 눈가와 손등에는 잔주름이 또렷했지만, 그것조차 무슨 마법처럼 느껴졌다. 왜냐고? 바로 모니카 벨루치가 아닌가 말이다. 그녀는 독특했다. “혹시 아이들에게 그림 형제의 동화책을 읽어 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 이랬을 만큼.

“동화를 읽어 주는 건 아주 중요해요. 아이들에게 공포에 휩싸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니까요. 아이들은 무서운 걸 즐겨요. 그리고 현실보다 무서운 건 존재하지 않아요. 아주 무서운 동화들도 세상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죠.”

남편인 프랑스 배우 뱅상 카셀과의 사이에 11개월 된 딸 ‘데바’를 낳아 기르고 있는 그녀는 “딸이 크면 ‘잠자는 숲 속의 공주’를 가장 먼저 읽어 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왕자님이 필요하니까…”라고 말했다.

모니카 벨루치는 왜 유독 어두운 것에 끌리는 걸까. ‘말레나’(2000년)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2003년)에서도, 그리고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늘 끔찍한 질투나 변태적인 성욕과 같은 어두운 욕망의 희생자를 자처하니 말이다.

“나는 나쁜 여자예요. 나는 좋은 엄마지만, 분명 나쁜 여자예요. 그냥 어두운 것에 더 끌려요. 어두운 건 더 흥미롭잖아요?”

○맷 데이먼“뭐든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배우는 ‘뻥’치는 운명이죠”

누가 하버드대 영문과 출신 아니랄까봐, 맷 데이먼은 농담할 때조차 졸릴 정도로 진지했다. 그는 “결혼하면 어떤 아빠가 될 거냐”는 질문에 “좋은 아빠요”라고, 또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밥 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죠”라고 대답할 정도로 매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인생이었다.

그는 “요즘 아이들은 당신이 자랄 때와 달리 그림 형제의 동화들에 별로 친숙하지 않다”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런 이야기들을 자녀에게 읽어 주는 건 부모의 의무예요. 요즘처럼 서너 살짜리들도 인터넷에 푹 빠져 있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자식들한테 동화책을 읽어 주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부모에게 달려 있어요.”

홍콩 누아르 ‘무간도’를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이 리메이크한 영화(미국제목 ‘Departed’·2006년 미국 개봉 예정)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하는 한편, ‘본 아이덴티티’와 ‘본 슈프리머시’에 이은 ‘본’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 ‘본 얼티메이텀(Ultimatum)’의 출연도 확정돼 할리우드 최정상급 배우의 자리를 거의 다지다시피 한 맷 데이먼. 하지만 그는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같았다.

“배우는 뭐랄까, 늘 왁자지껄하면서 ‘뻥(hustle)’을 쳐야 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죠. 늘 관객에게 그럴듯한 확신을 줘야 하니까요. 만약 ‘말을 탈 줄 아느냐’고 묻는다면, ‘물론이죠. 내 어머니가 당나귀인 걸요’라고까지 말해야 하는 게 배우예요.”

무거운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이 영화 속 그림 형제처럼 당신도 형제들과 티격태격하면서 컸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형과 베개로 상대를 쥐어박는 놀이를 하다 보면 힘에 밀려서 벽은 물론이고 난방기 같은 데 머리를 처박히기 일쑤였다”면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촬영 전 머리를 짧게 깎는데 머리를 밀던 아주머니가 상처투성이인 내 머리를 보고는 형이 있는 걸 대번에 알아맞혔다”며 깔깔 웃었다.

로스앤젤레스=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영화 ‘그림형제’는

31일 개막되는 제6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라,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두고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미국 개봉 26일.

‘헨젤과 그레텔’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등을 지은 그림 형제의 이야기를 기괴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판타지 영화. 민화와 전설을 수집하던 윌 그림(맷 데이먼)과 잭 그림(히스 레저) 형제가 젊음과 아름다움을 되찾기 위해 남자들을 유혹해 그들의 기(氣)를 빨아들이는 악마 ‘거울 여왕’(모니카 벨루치)의 비밀을 파헤친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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