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자기만의 색채와 고집을 가진 한국 영화의 대표적 감독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인지라 영화계 안팎에서 기대를 갖고 주시해 왔다. 영화의 밑그림은 방학기의 만화.
조선시대, 가짜 돈을 유통시키는 조직을 추적하는 안포교(안성기)와 선머슴 같은 열혈 여형사 남순(하지원), 남순과 적으로 만난 자객 ‘슬픈 눈’(강동원)의 사랑과 대결을 담고 있다.
시사회를 본 사람들의 반응은 재미있다, 없다에 앞서 ‘새롭다’ ‘다르다’는 것. ‘국내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 감독은 대사나 전통적 내러티브보다 빛과 어둠을 활용한 눈부신 영상미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영화의 막을 여는 장터 군중신, 남순과 ‘슬픈 눈’이 대결하는 돌담길 장면 등 상영시간 내내 이음매가 없어 보일 정도로 때깔 좋은 영상들이 이어진다. 모든 소리와 소리, 움직임과 움직임, 색감과 색감이 다 이미지로 연결돼 ‘수제품(手製品)’의 결을 보여 준다. 여기에 와이어 액션을 최소화하는 대신 땀의 흔적이 살아 있는 새로운 스타일의 ‘이명세표’ 액션미학이 조화를 이룬다.
사극이라는데 백의민족의 ‘흰옷’이 아니라 화려한 원색이 너울거리고, 영화의 리듬과 움직임, 색채, 소리 등도 시대물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예상을 뒤집어 놓는다. ‘영화적’이라는 표현의 모든 것이 결집된 이 영화를 보고 한 문학평론가는 “이미지의 소용돌이”라고 정의했다. 이 감독이 ‘자신의 7번째 영화이자 21세기의 첫 작품’에 대한 생각을 조근조근 들려주었다.
○고증은 던져버렸다
고정관념과 관습적인 것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상투나 흰옷 등 사극의 고정관념을 생각한다면 당황하는 분도 있겠죠. 퓨전은 뭘 섞는 것이지만 이 영화는 그 자체의 것들로 만들었어요. 통념을 버리고 화면에 흐르는 느낌을 쫓아간다면 단순함 안에도 겹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소설 ‘다빈치 코드’처럼, 과거 복제가 아닌, 상상과 추론을 통해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개연성과 가능성을 확장하고자 했습니다.
○내 작품에 드라마가 없다고?
영화에 대한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장르적으로 시와 음악과 비슷한데 소설이나 연극의 서사구조와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죠. 말이 아니라 배우들의 눈빛과 표정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때론 사랑이라는 단어를 빼곡히 채운 연애편지보다 백지 편지가 더 절절한 마음을 표현하지 않나요.
○액션영화? 영화액션!
스태프들에게 액션영화가 아니라 영화액션을 보여 주자고 했습니다. 마치 탱고를 추듯 펼쳐지는 남순과 ‘슬픈 눈’의 첫 대결은 단지 액션 대결이 아닙니다. 첫 데이트와 같은 교감의 장면이죠. 칼이 스치는 소리가 마치 사랑의 말로 들리지 않던가요?
영화라는 것은 움직임의 예술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모든 것도 살아 움직이죠. 눈발이 휘날리고, 염색한 천이 펄럭이고, 낙엽이 흩날리고, 칼 소리와 빛의 움직임까지. 기존 영화와 다르다면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요.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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