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머드 팩을 한 남자 성기가 1초가 다르게 쑥쑥 늘어나는 ‘적나라한’ 성기 노출도 있지만, ‘루시아’를 보며 성적(性的) 흥분을 느낄 ‘짬’은 없다. 사실과 허구, 소설 속과 현실의 이야기가 마구 뒤섞여 전개되는 탓에 뭐가 진짜고 가짜인지 헷갈린다. 그동안 섹스는 쓰윽 지나가 버린다.
만약 영화에 대한 평균적 수준의 관심을 가진 마초적인 남자라면, 이 ‘초현실적인’ 영화 속에서 눈여겨 볼 만한 건 두 장면이다. 남자 주인공인 소설가 로렌조가 서로 다른 여성과 상이한 스타일의 섹스를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는 달빛 아래 낯선 여자(편의상 월녀·月女라 부르기로 한다)와의 섹스이고, 다른 하나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아는 여자 루시아(편의상 일녀·日女라 부르기로 한다)와의 섹스다. 이들 장면에는 ‘월녀’와 ‘일녀’가 남성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각기 상반된 ‘전략’이 숨어 있다.
먼저 ‘월녀’. 절묘한 익명성과 함께 할 듯 말 듯 간질이는 음성(陰性)적 기운이 감지된다. 자신을 현시(顯示)하지 않은 채 ‘나(I)’보다는 ‘너(You)’를 부각시키며 남성의 마초본능을 부채질한다.
“내 생애 최고의 섹스였어. 난 네 이름조차 몰라.”(여) “불완전한 섹스가 더 나아.”(남) “내게 힌트라도 줘요. 어디서 왔지?”(여) “마드리드.”(남) “또 다른 건? 둘 이상의 힌트를 가진 채 우린 각자의 길을 가는 거야. 난 탐험하는 기분이야.”(여) “논리적이군.”(남) “멈추지 마. 넌 세계 제일의 섹스 기술을 가지고 있어.”(여) “네 말이 맞아.”(남) “난 발렌시아에서 온 네 하녀야. 네 생일선물이고.”(여)
이날 잉태돼 세상에 나온 딸은 달의 정기를 받아서인지 그 이름도 ‘루나(Luna)’다.
다음 ‘일녀’. 앞뒤 가리지 않는다. ‘너(You)’보다는 ‘나(I)’를 중심에 두면서 뜨겁고 직설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양성(陽性)적 기운이 넘친다.
“전 저 건너편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예요. 저희 사장님은 좋은 분이죠. 저랑 살기를 원해요. 저도 그게 기쁘죠. 왜냐하면 그런 사람이라도 제가 성적인 흥분을 느낄 땐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전 결심했죠.”(여) “뭐죠?”(남) “내가 진짜로 원하는 당신과 살기로.”(여) …(중략)… “그것 말고 당신이 또 원하는 게 있소?”(남) “당신과 함께할 시간요.”(여) “나도 오직 그러고 싶은 생각뿐이오.”(남) “당신이 상상 못할 만큼 난 행복해요. 뭐든지 원하는 걸 말해 봐요.”(여)
루시아는 로렌조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떤 게 더 좋죠? 낯선 여자와의 섹스? 아니면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여자와의 거친 섹스?”
어쩌면 이 질문은 영화 자체보다 더 ‘초현실적’(아니 ‘비현실적’)인지 모른다. 평생 이런 ‘배부른’ 선택을 두고 고민에 빠질 수 있는 남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말이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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