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래스&그로밋…’ 11월 3일 개봉▼
딴따따 딴따따 따라∼.
경쾌한 전주만 나와도 괴짜 발명가 월래스와 충직한 개 그로밋, 멋진 콤비의 팬들은 가슴이 설렌다. 단편 ‘화려한 외출’ ‘전자바지 소동’ ‘양털도둑’에 이어 월래스와 그로밋이 주연을 맡은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점토 인형으로 만든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명가인 영국의 아드먼 스튜디오가 ‘슈렉’을 만든 드림웍스와 손잡고 만들었다. 날고 싶어하는 닭들의 유쾌한 모험담을 그린 ‘치킨 런’에 이은 두 번째 합작품.
이번 영화에서 월래스와 그로밋은 마을의 텃밭을 망치는 못된 토끼를 잡는 ‘해충 관리 특공대’를 운영해 마을의 우상이 된다. 한편 월래스는 매년 ‘슈퍼 야채 선발대회’를 주최하는 레이디 토팅턴을 만나 첫눈에 반한다. 토끼를 잡은 뒤 죽이지 않고 ‘인도적’으로 보살피는 이들 앞에 온 동네 야채밭을 거덜 내는 ‘킹콩 같은 토끼’가 나타난다. 자신들의 명성을 위협하는 거대 토끼를 체포하기 위해 최강의 콤비가 수사에 나선다.
영국식의 점잖으면서도 신선한 유머와 재치, 일상에서 웃음을 끌어내는 잔잔한 에피소드들은 전작과 변함없지만 이번엔 ‘어드벤처’ 성격이 좀 더 강화됐다. 재미 속에 깊이도 담고자 했다. 원치 않는 생각과 욕망을 통제하는 뇌 개조 기능을 가진 월래스의 신발명품을 통해 과학만능주의의 현대 사회를 꼬집고,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필요 이상 소비하고 생산하는 인간들에 대한 풍자도 담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천재 혹은 바보 같기도 한 월래스의 매력도 만만치 않지만, 말없는 개 그로밋의 캐릭터야말로 영화를 압도한다. 툭하면 말썽을 일으키는 주인 월래스가 늘 ‘행동’이 앞선다면, 그의 해결사이자 수호천사, 가장 친한 벗인 그로밋은 ‘두뇌’를 사용한다. 눈썹도, 입도 없는 그로밋이 눈과 얼굴 근육만으로 천의 얼굴과 만 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경이적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보통 1명의 애니메이터가 1주일에 5초 분량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 점토인형이 나오는 1초의 촬영분을 찍는 데 24번의 움직임을 반복하는 섬세함과 장인정신이 요구된다. 그래서 84분의 장편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따라서 손으로 만든 이런저런 소품과 세트를 감상하는 것도 월래스와 그로밋을 보는 또 하나의 재미다. 이번에 주요 소품으로 나오는 자동차는 영국차 ‘오스틴 35’를 모델로 만들었다. 방향표시등과 와이퍼가 작동할 정도로 정교하게 제작해 실제 자동차 한 대보다 비용이 더 들었을 정도란다. 그로밋이 이 차를 몰고 벌이는 추격신은 웬만한 실사영화 못지않게 박진감이 넘친다.
목소리 연기진도 짱짱하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피터 샐리스가 월래스 역을 맡고, 레이디 토팅턴 역은 헬레나 카터, 월래스의 라이벌 빅터 역은 랠프 파인스가 맡았다.
극장에 가면 이 영화에 앞서 보너스 애니메이션도 볼 수 있다. 올여름 인기를 끌었던 애니메이션에 등장한 조연캐릭터 펭귄 4총사가 주인공을 맡은 10분짜리 애니메이션 ‘마다가스카 펭귄들의 크리스마스 미션‘를 덤으로 보여 준다.
장편으로 스케일이 커진 만큼 이를 채우는 이야기 얼개가 좀 느슨해진 느낌을 주긴 한다. 그럼에도 조미료를 전혀 치지 않은, 자극적이지 않은 슬로 푸드처럼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영화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팀버튼 감독의 ‘유령신부’▼
‘유령신부’는 팀 버튼 감독이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년) 이후 선보인 기괴하고 유쾌한 애니메이션이다. 러시아 민담으로 전해 오는 ‘운 나쁜 남자와 죽은 신부 간에 이뤄진 우연한 결혼’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까지 꼬박 10년이 걸렸다. 이렇게 힘든 작업이지만, 단순히 컴퓨터만으로 표현하기 힘든 독특한 질감과 캐릭터의 존재감을 전해 주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착하지만 소심한 빅터(목소리 연기 조니 뎁)는 부모의 강요로 가난한 귀족가문의 딸 빅토리아와 정략 결혼을 위해 선을 본다. 막상 빅토리아를 만나 본 그는 한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실수를 연발해 여자 부모의 눈 밖에 난다. 신세를 한탄하다 숲 속으로 들어간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유령신부(헬레나 카터)와 얼떨결에 혼인을 하게 된다. 영화는 현실과 지하세계를 오가며 빅터와 매력적인 유령신부, 자신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지켜 내려는 빅토리아 세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은 으스스하지만 영화는 사랑에 대한 한 편의 서정시처럼 울림을 남긴다. 빅터와 빅토리아가 피아노를 함께 치며 서로에게 마음을 전하는 장면에선 사랑의 두근거림과 설렘이 오롯이 살아 있다. 웃음도 만만치 않다. 걸핏하면 해골들이 떼로 등장하는데도 분위기가 어둡거나 칙칙하지 않다. 풍부한 유머감각으로 걸러 낸 아이디어와 디테일이 살아 있는 덕분이다. 죽은 자들은 모든 제약에서 벗어나 열정적으로 살아간다. 한 편의 뮤지컬 같은 해골 일당의 결혼 축하쇼를 비롯해 결혼 선물로 등장하는 해골 애완견이나 해골의 눈에서 툭 튀어나오는 벌레도 끔찍하기보다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이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보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낭만적인 버튼 감독의 개성이 잘 녹아 있다. 영화 속에 그려진 현실은 차갑고 단조롭고, 지하세계는 활기와 생기가 넘친다. 살아 있는 인간 세상은 무채색, 지하 세상은 화려한 원색의 화면으로 대비된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사는 게 더 겁난다”는 대사에서는 삶에 대한 직관이 읽힌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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