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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한마디로 재단하기란 불가능하다. 10대적 감수성을 낭만, 사랑, 영원이라는 키워드로 꿰뚫고 있는 김 감독의 영화는 보는 이의 감성 연령에 따라 180도 다른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더할 나위 없이 로맨틱하고 가슴 절절할 수도, 눈 뜨고 못 봐줄 만큼 유치하고 비현실적일 수도 있단 얘기다.
먼저 이 영화에 흠뻑 빠진 한 10대 소녀의 감성 속으로 들어가 보면….
“아, 멋져! 현빈.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쓱 꺼내 피곤한 듯 던지는 그 모습이란. 할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수천억 원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시골 고교생활을 견뎌야 하는 그의 모습은 잠시 평민의 삶을 재미 삼아 맛보는 왕자님의 모습이야.
현빈은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맡았던 ‘삼식이’ 역보다 돈도 더 많고 더 건방진 데다 가슴도 더 뜨거워. 업그레이드된 삼식이랄까. 그가 죽어 가는 은환과 동거를 하면서 팔베개도 해 주며 보살피는 장면은, 사랑하는 이와 둘만의 공간에서 예쁘게 살고 싶은 나의 꿈과 어쩌면 그리 똑같은지.
현빈이 은환에게 던지는 대사는 한 행 한 행이 심금을 울리는 시(詩)야. 그가 ‘너랑 같이 있으면 밤도 낮 같아. 네가 너무 환해서’라고 은환에게 속삭일 땐 숨이 멎는 줄 알았다니까. 현빈이 은환의 하얀 발 위로 털양말을 신겨 주는 장면에선 신데렐라에게 유리 구두를 신겨 주는 왕자님의 모습까지 겹쳐졌어. 내가 영화 속 은환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은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불만에 가득 찬 한 30대 아저씨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면….
“제목부터가 만화야. 사랑 하나 때문에 수천억 원을 포기한다는 게 말이 돼?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비 쏟아지고 눈 펑펑 오고. 유치한 대사들은 또 뭐야? ‘너무 행복해서 나 지옥 갈 것 같아요’(은환)까지는 참아. 하지만 현빈이 ‘키스할 때 왜 눈을 감는지 알아? 그건 상대가 너무 눈부시기 때문이야’라며 키스할 땐 속이 메스꺼웠어. 아무리 드라마 ‘파리의 연인’과 ‘프라하의 연인’의 작가가 각본을 썼다지만 너무 비현실적 ‘왕자 스토리’ 아니야?
현빈이 잘생긴 건 인정해.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이랑 뭐가 달라? 게다가 이 영화엔 스토리라는 게 없어. 중반 이후엔 무조건 울리려고만 들어. 발라드 가사 같은 대사를 죽도록 반복하면서 관객이 울 때까지 지루하게 밀어붙이잖아. 이게 신파가 아니면 뭐가 신파야?
이 영화에서 하나 건질 거라곤 은환으로 나오는 이연희란 배우야. 영화엔 처음 나오는 신인 같은데 연기는 현빈 뺨치게 잘하네. 생긋 웃는 모습이 언뜻 청순한 듯하면서도 노련한 맛이 숨어 있는 게 일품이야. 아, 지금이라도 내가 10대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9일 개봉. 12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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