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주인공들의 법적 책임은?

  • 입력 2006년 3월 2일 03시 38분


《‘주인공은 늘 선(善)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착각에 빠지기 쉽다. 관객은 대부분 주인공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간접 체험하게 되고, 따라서 주인공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주인공이 ‘나쁜 놈’인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국내 개봉된 영화 3편을 골랐다. 이들 영화 속 주인공은 하나 같이 동정적 시선으로 바라볼 대목이 많지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위법 행위를 일삼는 건 아닌지 궁금해지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 주인공이 과연 현행법(현재 대한민국 법률)을 위반한 것인지 여부를 법무법인 ‘아주’의 김민성 변호사에게 물었다.》

○ 흡혈형사 나도열 → “피빨아 숨지게 했으니 살인죄”

Q: ‘흡혈형사 나도열’의 마지막 장면에서 흡혈귀가 된 나도열 형사(김수로·사진)는 악당 탁문수(손병호)의 목을 물어뜯으며 피를 빨아 숨지게 합니다. 통쾌한 장면이죠. 그런데 현재 기획 단계에 있는 이 영화 속편 내용에 따르면, 탁문수 역시 흡혈귀로 되살아나 나도열과 대결을 펼칩니다. 이 경우 탁문수의 피를 빨아 먹은 나도열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나요?

A: 탁문수가 일단 사망한 이상 나도열에겐 살인죄가 적용되고 형법 제250조 제1항에 따라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다르게 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어떤 상태에 이르러야 비로소 사망했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하여 현재 법학계의 통설적인 견해는 ‘맥박 정지설’을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탁문수가 흡혈귀가 되는 과정에서 맥박이 정지되었다면 나도열에게는 살인죄가 적용되겠지만, 만약 탁문수의 맥박이 계속 뛰고 있었다면 법률적으로 ‘사망 상태’라고 볼 수 없어 살인죄의 성립이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 타인의 목을 물어뜯은 나도열에게는 살인죄 대신 상해죄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또 이런 문제도 있습니다. 탁문수의 맥박이 뛰고 있었더라도 흡혈귀로 변신한 탁문수를 과연 사람이라고 볼 수 있는지 여부 말입니다.

○ 더 차일드 → “아이 팔아넘긴 행위 아동복지법 위반”

Q: ‘더 차일드’에서 주인공인 청년 브루노(제레미 르니에·사진)는 돈이 궁하던 차에 애인이 갓 낳은 자신의 아기를 이름 모를 조직에 돈을 받고 팝니다. 그랬다가 애인이 분노하자 웃돈을 주고 아기를 다시 사오죠. 이 경우 아이를 판 행위는 범법행위겠지만, 아이를 되사온 행위도 위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나요?

A: 브루노는 일단 아이를 팔아넘긴 행위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아동복지법 위반에 해당되어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아이를 다시 사온 행위만 떼어내 따져 본다면, 형법상 죄책을 묻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인신을 팔거나 산 행위는 분명 범죄구성요건이 되지만, 자신의 아이를 되찾아온 경우이므로 사회의 상규에 반하지 않는 일종의 정당행위가 되겠죠.

○ 음란서생 → “후궁과 성관계, 부인이 신고해야 간통죄”

Q: ‘음란서생’에서 조선시대의 유약한 선비 윤서(한석규·사진)는 왕이 총애하는 후궁 정빈(김민정)과 은밀하게 성관계를 갖습니다. 이 경우 윤서는 간통죄를 저지른 건가요?

A: 윤서가 후궁 정빈과 몰래 정을 통한 행위는 간통죄에 해당되고, 왕의 고소가 있을 경우(간통죄는 친고죄이므로 피해자인 배우자가 직접 고소해야 한다) 형법 제241조에 따라 윤서와 정빈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집니다. 하지만 현대는 일부일처제로 중혼(重婚)이 금지되어 있어 첩은 혼인신고를 할 수 없으므로, 정빈은 왕의 법적인 배우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같은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진다면 왕은 고소를 할 법적 권한이 없습니다. 물론 선비 윤서는 정실부인이 있으므로 그 부인이 고소할 경우 윤서와 정빈은 간통죄로 처벌을 받습니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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