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승재]“그 많은 젊은 영화인들은 다 어디갔나?”

  • 입력 2006년 4월 17일 03시 03분


“아비 어미도 없이 어떻게 새끼가 있겠어? 이런 싸가지 없는 것들.”

한 원로 영화감독은 분노했다. 그는 “한국 영화계의 거목(巨木)이니 할 땐 언제고, 정작 가는 길엔 고인을 뜨내기 취급한다”며 언성을 높였다.

신상옥 감독의 영결식이 진행된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대한민국 영화계 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장의 풍경에 기자는 왠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300여 명의 참석자 대부분이 머리가 희끗한 원로 영화인들이었고, ‘잘나가는’ 현역 영화인들의 모습은 배우 감독 제작자를 통틀어 열 손가락으로 꼽아도 손가락이 남을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입 무겁기로 소문난 배우 안성기 씨가 영결식장에서 “내 잘못이다. 영화계에서 어른들과 현역 배우 사이의 중간 위치인 내가 후배들의 참석을 독려했어야 했는데…”라며 안타까워했을까.

영결식 하루 전인 14일 밤 열린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이영애 씨는 “신 감독님의 명복을 빈다. 그분처럼 평생을 바쳐 영화를 사랑하신 분이 있어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는 감동적인 수상 소감을 남겼지만 실제로 빈소를 찾은 톱스타나 유명 감독은 거의 없었다. 5일장 동안 조문한 영화인이라고는 배우 이병헌 박중훈 이덕화 문성근 씨, 감독 이장호 배창호 이창동 강제규 씨 등이 고작이었다.

한국 영화는 최근 전성기다. 칸, 베를린, 베니스 같은 세계 굴지의 영화제에서 주요 부문상을 받는가 하면 제작비 100억 원대의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출현도 이제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제 아무리 아름답게 활짝 핀 꽃도 출발은 작은 씨앗이었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실험정신을 놓치지 않았던 한국 영화의 1950, 60, 70년대 선배들이 없었다면 오늘의 영광이 가능했을까. 게다가 신 감독은 영세한 한국 영화의 제작시스템을 세계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첫발을 내디뎠던 인물이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시위에는 “한국 영화를 살리자”며 분기탱천해 모여들었던 젊은 영화인들. 그들의 모습을, 정작 한국 영화에 큰 족적을 남긴 선배 영화인의 마지막 가는 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이승재 문화부 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