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노출의 자유vs감정의 자유…‘라이 위드 미’‘퍼펙트…’

  • 입력 2006년 5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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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세계에서는 암컷의 성적 욕망이 문제 된 적이 없건만 유독 인간 여자의 욕망만큼은 그것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 자체가 논란거리였다. 게다가 오랜 가부장적 틀 안에서 살아 온 한국 여자들에게 ‘성욕’은 표현해서는 안 되는 금기이기도 했다.

여자가 갖게 된 경제력 때문이든, 성적 지위 향상이라는 글로벌 문화 트렌드 때문이든 여자의 욕망이 바야흐로 ‘자유의 만개’로 향하고 있음은 사회 곳곳에서 감지된다. 잇따라 개봉하는 외화 ‘라이 위드 미’(Lie with Me)와 ‘퍼펙트 스트레인저’(Perpect Strangers)는 여자의 자유를 ‘성’이라는 코드로 소재나 주제 면에서 파격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캐나다 영화 ‘라이 위드 미’는 분방한 20대 여성의 성 소비에 관한 것이 주제다. 주인공은 사랑보다 섹스에 더 익숙하다는 점에서 현대 여성상의 새로운 진화를 보여 준다.

이 아가씨는 마음대로 남자를 고르고 남자 옷을 먼저 벗기고 절정의 순간도 남자를 억압하며 리드한다. ‘하고 싶을 때, 어디서든, 안전하게’ 하는 그녀는 카메라를 무시하듯 거의 몸의 모든 부분에 대한 노출에 관대하다. 그녀의 당당한 몸은 오히려 조각 같은 남자의 몸조차 무력하게 보이게 할 정도다.

이 영화는 그러나 중반부를 넘어서며 바야흐로 섹스에서 사랑으로 주제가 이동한다는 점에서 신선함과 식상함이라는 이중적 느낌을 갖게 한다.

남자를 마음대로 소비하던 여자는 마침내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에게 상처받고 차이고 게다가 다시 돌아온 그를 받아들인다. 이런 여자의 모습은 도덕이 섹스의 지속을 결정했던 시대가 가고 감정이 중시되는 시대로 바뀌고 있음을 짚는다는 점에서 신선하다. 하지만 애초 탐구하고자 했던 ‘여자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본질을 놓치고 그저 모성적 포용으로 모든 것을 회귀시켜 버린다는 점에서 감독의 상상력 부족을 보여 준다. 12일 개봉. 18세 이상

이에 비해 뉴질랜드 영화 ‘퍼펙트 스트레인저’는 비록 처음에는 남자에게 끌려가지만 나중에는 남자를 이끌어가는 사랑을 하는 여자의 이야기란 점에서 ‘여자의 자유’라는 주제 면에서는 한 단계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납치된 여자가 결국은 납치범을 사랑하게 되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지만, 영화 내내 영육이 갇힌 자를 여자로 일관하는 기존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선 실제 갇힌 자가 여자에서 남자로 바뀐다.

남자는 여자를 섬에 납치해 놓고 여자 몸에 손도 대지 않고 진실한 마음으로 헌신한다. 그런 남자를 믿지 않았던 여자는 어느 날, 남자를 칼로 찔러 중태에 빠뜨리고 그를 간병하게 되면서 180도 달라지는 감정 변화를 겪는다. 남자는 결국 죽지만 여자는 남자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남자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품고 산다. 그리고 섬에 찾아 든 남자의 친구가 섬에서 같이 살자는 조건을 내세우자 기꺼이 결혼해 준다.

현실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은 엽기 스토리인데 이물감이 별로 없는 것은 비록 수동적인 상황에 갇혔지만, 능동적으로 이를 뛰어넘으려는 여자의 당당함과 용감함이 탄탄한 시나리오 속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4일 개봉 18세 이상.

어떻든 두 영화는 이제 현대 여성들이 욕망에 대한 죄의식을 벗어던지고 많은 남자가 그러했듯 ‘욕망 이후’를 고민하고 있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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