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티파니에서 아침을’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카포티는 소재를 찾던 중 허구(소설)가 아닌 진실(논픽션)을 쓰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신문에 짧게 보도된 캔사스 일가족 살인 사건에 끌리게 되고 카포티는 경찰보다 더 많은 관계자를 취재하면서 사건에 접근한다. 마침내 두 살인마 중 한 사람인 페리의 입과 마음을 여는 데 성공해 그를 주인공으로 ‘냉혈한’ 집필에 성공했고 그것은 밀리언셀러가 된다.
하지만 카포티는 자신을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린 그 작품 때문에 오히려 삶이 추락한다. 살인자 페리를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페리가 사형된 이후 단 한 권의 책도 완성하지 못하다 알코올 중독자로 죽었다는 영화 엔딩 자막은 어떤 충격적 이미지보다 서늘하다.
작품은 일단 세상에 나오면 생물체가 된다. 아이는 부모가 낳지만 부모는 다시 아이의 삶에서 영향을 받듯 작품의 삶과 함께 작가의 삶도 바뀌는 경우가 많다. 카포티가 바로 그랬다. 도대체 예술이 무엇이기에, 한 인간의 삶을 이토록 뒤흔들 수 있을까.
예술이란, 사람을 내성적, 이기적으로 만들고 성취가 아닌 패배를 합리화하므로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삶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보이지 않는 것들’에 주목하는 예술의 힘은 새삼스럽다. 짧은 신문 기사 한 줄 밑바닥에 잠재한 또 다른 세상을 보는 시선, 예술가 카포티는 이렇게 말했다.
‘11월 14일 그날 밤. 두 남자가 캔사스의 조용한 농가에 침입했고 가족을 몰살했어. 그들은 왜 그랬을까? 이 나라에는 두 개의 세계가 존재해. 조용하고 보수적인 삶과 두 살인자의 삶이지. 전혀 다른 두 세계가 피비린내 나는 밤 서로 마주치게 된 거야.’
카포티가 쓴 ‘냉혈한’은 1950년대 경제 성장의 안온함에 빠져 있었던 미국인들을 깨어나게 했다. 작가는 풍요의 뒤란에서 소외되었던 밑바닥 인생들에 주목해 대다수 사람이 향유하는 견고한 일상이란 것이 어느 때라도 깨질 수 있는 유리 같은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새삼 일상의 평화에 감사하도록 이끌었다.
모든 예술 작품에는 혼돈을 정리하고 삶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들이 있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도록 교육하며 고통을 이해하고 꺼진 감수성이 다시 타오르도록 도와주고 눈물과 웃음을 통해 감정의 균형을 잡아 준다.(알랭 드 보통 ‘불안’) 한마디로 예술은 삶을 비평하고 설명해 줌으로써 세상을 더 진실하고 현명하게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안내자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비난만 퍼붓는다면, 당사자는 그것을 헤쳐 나오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는 수많은 비극과 실패를 다룬 예술 작품을 통해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이다.
허문명 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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