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인표가 자신을 “영화계의 안정환”이라고 하자 강 감독은 “배우들이 연기보다 말을 더 잘해요”라고 받아쳤다. 그리곤 차인표 옆 조재현을 가리키며 “연기 잘한다고 캐스팅했는데, 아니더라고요. (그의) 연기가 좋았다면 전적으로 연출력 덕분입니다”라는 말로 좌중을 웃겼다. 관객들의 왁자한 박수와 웃음으로 시작한 영화 ‘한반도’는 그러나, 아쉽게도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의 영화였다.
‘민족주의와 반일’이라는 당초의 주제 의식을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를 짓누른 무거움의 정체가 단지 주제 때문이 아니라 ‘주제를 어떻게 풀어내는가’ 하는 문제였기에 더 답답했다. 영화 ‘실미도’의 1000만 흥행기록을 세우며 한국 영화사에 숱한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들어 온 강 감독의 영화에서 ‘영화라는 장르가 그 어떤 것을 주장해도 잃지 말아야 할 기본이 즐거움이라는 것’을 확인받는 것은 새삼스러움을 넘어 당혹스러웠다.
‘한반도’의 배경은 가상의 가까운 미래. 남북관계의 개선으로 경의선 철도 개통이라는 역사적 이벤트가 열리는 날, 일본이 1907년 대한제국과 맺은 조약을 근거로 경의선 운영에 관한 모든 권한이 자기네 나라에 있다며 철도를 개통하면 차관 약속과 각종 기술 제공을 해주지 않겠다고 딴죽을 건다.
한일관계라는 민감한 국제문제를 청와대·국정원이라는 가장 강한 제도권 공간 속 엘리트 리더들의 세계관을 한 축으로 하고 재야 사학자라는 비제도권 주인공의 맞대응을 또 다른 한 축으로 녹여 낸 상상력이나 일촉즉발의 한일 해상전 같은 스케일에서는 경계를 허물며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강 감독 특유의 자신감, 호쾌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문제는 디테일이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러닝타임 동안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드라마 속에 녹아들지 않고 마치 선전 선동의 언어처럼 파편화되어 부서졌다. ‘말(言)’의 난무가 문제가 아니라 비현실적 상황에 따른 단선적인 캐릭터의 묘사가 문제였다. 대통령의 캐릭터는 너무 완고해서 박제된 듯했다. 합리적이고 냉철한 시각을 견지했다가 나중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음모가가 되어 버리는 총리의 캐릭터도 종잡을 수 없었다.
국새 하나로 한일관계가 좌우된다는 설정도 거칠고 여기저기 장치한 계기들 역시 현실성이 없다 보니 배우들의 대사는 느끼는 언어가 아닌 ‘주장하는 언어’가 되어 버린 것. 현 시점과 대비되는 100여 년 전 명성황후 시해나 고종의 묘사도 학술적 진위를 떠나 긴박하게 겹치지 못했다.
영화는 직설적인 투사(鬪士)의 언어가 아니라 은유적인 ‘감성의 언어’가 지배하는 예술장르이지만, 강 감독은 기존 영화들에서 독특한 ‘직설 미학’을 보여 줬다. 하지만 ‘한반도’는 이전 그의 영화들과는 분명 다른 지점에 서 있다. 7월 13일 개봉. 15세 이상.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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