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기수와 경주마 달콤한 우정 만들기… 영화 ‘각설탕’

  • 입력 2006년 7월 27일 03시 03분


코멘트
애마소녀 시은(임수정)과 말 천둥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영화 ‘각설탕’. 사진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애마소녀 시은(임수정)과 말 천둥이의 아름다운 우정을 그린 영화 ‘각설탕’. 사진 제공 CJ 엔터테인먼트
“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조동진의 ‘제비꽃’ 노랫말처럼, 말은 소녀를 만났다. 소녀는 말이고 말은 소녀였다. 그리고 둘은 함께 달렸다. 세상 끝까지. 8월10일 개봉하는 ‘각설탕’은 국내 최초로 사람과 말의 우정을 소재로 한 영화다. 할리우드적 소재를 한국적으로 풀어내려는 시도다.

제주도 목장에서 태어난 시은(임수정)은 어릴 적부터 말 ‘장군’이와 애정이 각별했다. 장군이가 ‘천둥’이를 낳다 죽은 후 엄마 없는 시은은 엄마 잃은 천둥이와 남매처럼 같이 커 간다. 제목인 각설탕은 말이 좋아하는 간식. 둘 사이 사랑의 매개체다. 천둥이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면서 이별을 하지만 2년 뒤, 최고의 기수를 꿈꾸는 시은과 천둥은 재회한다.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될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말을 움직이는 건 채찍이 아니라 기수의 마음”이라는 대사처럼 이 영화는 올바른 말만 하는 착한 주인공의 아름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술수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만든 영화고 나쁘게 말하면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뻔한 스토리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역이 양념처럼 등장하지만 ‘남을 낙마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임의 법칙을 무시하는 주인공은 꿋꿋이 싸워 이겨낸다. 선악의 대비나 인물의 갈등이 간단 명확해 관객은 생각할 필요가 없고 영화는 공식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이 단순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에잇” 하면서 결국은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그런 힘은 있다. 예를 들어 시은과 천둥이 재회할 때, 너무 우연적인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안타깝게 서로를 찾는 그 모습에 눈물이 나는 식이다. 가슴 깊은 곳까지 건드리지는 못하면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은 이 영화의 선물이다. 화면은 온통 초록빛에 흙빛이다. 바다가 보이는 들판에서 말에게 기대 잠이 들거나 비 오는 날 말 아래서 비를 피하는 시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이 정적인 풍경과 대비되는 경마장의 미칠 듯한 속도감도 돋보인다. 특수 트레일러를 만들어 촬영 장비를 싣고 질주하는 말에게 1m까지 접근해 촬영했다는 제작진의 노력이 빛을 발한다. 이는 전체적으로 늘어진 느낌을 주는 영화에 포인트를 줬다.

덥수룩한 커트머리가 잘 어울리는 임수정은 맑고 씩씩한 시은 역을 무리 없이 소화해 냈다. 여배우를 ‘원톱’으로 기용한 영화라고들 하지만 사실 임수정은 원톱이 아니라 말과 함께 주연한 ‘투톱’이다. 10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다는 천둥이는 표정 연기의 달인. 실제로는 똑같이 생긴 말 다섯 마리가 천둥이 역할을 나눠 연기했다. “거 참, 자∼알 생겼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긴 다리에 윤기가 흐르는 미끈한 몸도 멋지지만, 압권은 항상 물기를 머금은 듯 젖어 있는 눈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 경마장의 밝은 불빛이 반사돼 별이 박힌 것같이 빛나는, 촉촉한 말의 눈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 같은 눈. 시은이가 원칙을 저버린 경쟁자에게 “말보다도 못한 새끼”라고 일갈하듯, 정말이지 동물이 사람보다 나을 때가 너무 많다는 걸 이 영화는 알려주고 싶은 것 같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