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세포 소녀’는 ‘즐기면서 사는’ 발칙한 ‘고딩’들의 엽기 발랄한 코믹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B급 달궁’(본명 채정택)의 인터넷 연재만화 ‘다세포 소녀’가 원작. 원작 만화는 수채화 느낌이 나는 순정만화풍 그림에 질펀한 성적 농담의 ‘부조화스러운 조화’로 마니아 군단을 형성하며 인기를 끌었다.
○ 인터넷 연재만화 각색
영화의 배경은 쾌락의 명문 무쓸모고등학교. 교사와 학생이 성병을 이유로 조퇴하고, 수업시간에 레이스 달린 팬티를 입은 남교사가 제자에게 사도마조히즘(SM)을 연상케 하는 매질과 채찍질을 부탁하는 그런 곳이다. 원조교제로 가족을 부양하는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김옥빈)는 스위스에서 전학 온 초절정 꽃미남 안소니(박진우)에게 반하지만 안소니의 관심은 딴 데 있다. 교내에서 유일한 숫총각인 외눈박이(이켠)는 외모 때문에 집단따돌림(왕따)을 당하지만 그런 외눈박이를 뜨겁게 바라보는 눈길도 있으니….
이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 그리고 이들 캐릭터가 현실을 과장하면서 비트는 데 있다. ‘가난을 등에 업은 소녀’는 등에 인형같이 생긴 ‘가난’을 달고 다닌다. 영화나 드라마 속의 가난한 소녀들은 항상 현실을 이겨 내는 꿋꿋하고 밝은 모습으로 그려지지만 침울한 이 소녀는 “돈, 돈” 하는 궁상의 극치. 완벽한 꽃미남 안소니는 이름마저 모든 소녀의 판타지 대상인 ‘들장미 소녀 캔디’의 남자 주인공과 같지만 온갖 잘난 척에 어설픈 영어 단어를 섞어 쓰며 욕을 남발한다. 외눈박이와 그의 아름다운 ‘남동생’ 두눈박이, ‘여자들은 왜 흰 팬티를 선호하나’ 등의 미스터리를 푸는 ‘테리&우스’ 등은 존재만으로도 웃음을 유발한다.
‘알고 보니 오빠, 알고 보니 엄마’라는 식으로 모든 문제를 설명해 버리는 TV 드라마의 관습을 패러디하며 ‘인생은 역시 TV 드라마’라고 비꼬기도 한다.
○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 되레 웃음 유발
원조교제, 사도마조히즘, ‘크로스 드레서’(이성복장 애호가), 동성애 등 사회적 금기로 여겨지는 것들을 가벼운 웃음의 소재로, 귀여운 음담패설로 만들어 버리는 이 영화는 확실히 비현실적이다. 그런 태도가 역설적인 리얼리티를 보여 준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캐릭터와 에피소드는 ‘원작만큼만’ 재미있다. 에피소드의 반전도 쉽게 예상되는 수준으로 기발한 파격과 상상력을 보여 주지는 못한다. 관습과 파격 사이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다고 할까. 만화책의 챕터가 끝나듯 중간 중간 단절감이 느껴지고 끝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 캐릭터의 특징이나 중견 배우들의 엽기적인 변신 등 재미있는 부분이 이미 인터넷에서 너무 많이 알려져 영화를 볼 때는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다양할 것이다. 극중 안소니의 대사처럼 ‘컬처 쇼크’를 느끼든지, 섹스 코미디를 기대했다가 야한 장면이 없어 김이 샐지도 모른다. ‘세상엔 안 되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15∼19세들이 가장 열광할 듯.
제목 ‘다세포 소녀’는 이분법과 전통에 얽매여 개성과 다양성을 무시하는 단세포적인 사회에 대해 이견을 제시한다는 뜻이라고. 설마 원조교제도 개성이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정사’ ‘스캔들’을 통해 스타일리스트로 정평이 나 있는 이재용 감독의 작품답게 컬러 만화 같은 비주얼과 뮤지컬 삽입 등의 시도는 참신하다. 10일 개봉, 15세 이상.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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