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괴물’ 생명공학연구원에 물어보니

  • 입력 2006년 8월 31일 03시 01분


《영화 ‘괴물’이 관객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이유는 괴물이 한강에서 태어났다는 설정 때문이다. ‘고질라’처럼 외딴 섬도 아니고 ‘에일리언’처럼 외계행성도 아닌 우리가 살고 숨쉬는 공간, 한강 말이다. 하지만 괴물이 한강에서 탄생한다는 게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만약 괴물과 맞닥뜨린다면 살아날 비책은 없을까.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김창배 박사에게 물었다.》

Q: 영화에는 미군이 한강에 흘려보낸 독극물(포름알데히드) 때문에 괴물이 탄생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할까요?

A: 회의적입니다. 괴물이 유전자 변이를 통해 태어났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아직까지 포름알데히드 같은 독극물이 유전자 이상을 야기했다는 연구 보고는 없습니다. 독성물질에 의해 유전자 변이가 아니라 단순한 ‘형태 변형’이 일어났을 경우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금속에 노출된 물고기의 등이 휘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독극물에 노출돼 변형된 생명체는 결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괴물처럼 강력한 힘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Q: 괴물은 어류, 양서류, 파충류 중 어디에 속할까요? 또 어떤 동물이 변한 것일까요?

A: 헤엄을 잘 치고 뭍에서도 뛰어다닌다는 점, 그리고 사람을 잡아먹는 포식성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괴물은 파충류에 가깝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괴물의 크기나 날렵한 움직임, 포악성 등으로 볼 때 악어와 같은 대형파충류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뭍에 나온 괴물이 비 내리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채 돌처럼 가만히 있는 것도 수분을 섭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높아진 체온을 내리기 위한 체온조절 행위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물을 먹기 위해서라면 그냥 한강 물을 마시면 되니까요. 악어와 같은 파충류는 변온동물이라 스스로 체온조절을 하지 못해 입을 딱 벌리는 방식으로 몸을 식힙니다. 그러나 괴물이 한강에 사는 남생이(거북과 비슷한 동물)와 같은 토종 파충류나 사람에 의해 방치된 외국산 소형파충류로부터 비롯됐다고 추정하기에는 괴물의 몸집이 지나치게 큽니다.

Q: 괴물을 먹으면 악어 맛이 나겠군요.

A: 모르겠습니다. 파충류 중 일부가 조류와 진화상 가깝다고 하니 어쩌면 새(鳥) 맛이 날 수도 있죠. 영화에는 괴물에 바이러스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므로 인간이 먹어도 괜찮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만약 괴물이 유전자 변형된 동물이라면 (먹을 때)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Q: 괴물의 지능지수는 얼마나 될까요?

A: 괴물이 강두의 아버지(변희봉)를 공격하는 순간을 봅시다. 괴물은 물속에서 틈을 보다가 갑자기 수면을 박차고 나와 아버지를 표적 공격한 뒤 사라집니다. 이렇게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면서 헌터(사냥꾼)적인 자질을 보이는 동물들은 지능이 대체로 뛰어납니다. 인간이라는 ‘먹잇감’을 잡아다가 특정 장소에 쌓아두는 괴물의 행태는 표범과 같은 포식동물의 습성과 흡사합니다. 역시 헌터의 습성입니다.

Q: 괴물과 맞닥뜨렸을 때 살아남을 방법이 있나요?

A: 괴물의 민첩성과 포악성, 강력한 이빨구조를 감안할 때 괴물과 맞닥뜨리면 별 수 없이 죽을 공산이 큽니다. 다만, 괴물은 악어처럼 수면의 진동을 감지해 먹잇감의 위치를 포착할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한강에서 수영하며 물장구를 치거나 낚시를 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영화 마지막에 보면 한 겨울밤 한강 매점을 지키는 주인공 강두(송강호)가 총구를 겨누면서 또 다른 괴물의 출현을 경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만, 강두가 그리 신경을 곤두세울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괴물이 악어처럼 변온동물에 속한다면 추위에 약할 것입니다. 한강 어딘가에 틀어박힌 채 꼼짝달싹 않고 겨울잠을 잘 수도 있겠죠.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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